◇나는 왜 패션을 사랑하는가/리즈 틸버리스 지음/노지양 엮음/352쪽·1만3000원/책읽는수요일
패션은 무엇일까.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패션은 단순히 옷을 파는 게 아니라 꿈을 파는 것”이라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생각나는 패션은 누군가에겐 치열하고 냉정한 현실이다. 그 사실을 리즈 틸버리스는 이 자서전에서 담담히 읊조리고 있다. 1980, 90년대 영국 ‘보그’와 미국 ‘하퍼스 바자’ 등 대표적 패션잡지 두 곳에서 편집장을 지낸 그는 잡지 표지 사진 한 장을 예술의 한 작품으로 승화시키려 했다. “잡지 커버는 스스로 가판대에서 걸어 나와 여자들을 유혹할 수 있어야 한다” “최고의 사진은 가슴과 기억에서 나온다” 등은 한평생 패션계에 몸담으면서 깨달은 그만의 신조였다.
잡지 편집장으로 ‘한 획’을 그은 틸버리스가 쓴 책답게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 DKNY의 도나 캐런,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 모델 나오미 캠벨, 케이트 모스, ‘보그’의 편집장인 애나 윈투어 등 패션계의 스타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의 등장만으로도 책이 ‘블링블링’(반짝반짝 빛나는 모습)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마냥 블링블링하지는 않다. 틸버리스는 1999년 난소암에 걸렸고 투병하다가 숨졌다. 패션과 함께 이 자서전의 또 다른 축인 난소암 투병기는 눈물겹다. 패션계의 거물도 ‘생명의 유한함’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자서전 말미, 그가 독자들에게 당부한 ‘카르페 디엠(오늘을 살아라)’이란 말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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