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펴낸 최원석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9일 03시 00분


“오랫동안 배산임수 주거 꾸리면서 사람은 山을 닮고, 山은 사람 닮아”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한길사)을 펴낸 최원석 교수. 20년 넘게 산만 연구한 그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 산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인문학으로 풀어냈다. 최원석 교수 제공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한길사)을 펴낸 최원석 교수. 20년 넘게 산만 연구한 그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 산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인문학으로 풀어냈다. 최원석 교수 제공
고시생과 스님, 무당이 공통적으로 즐겨 찾는 곳은? 바로 산이다. 이른바 ‘고시촌’이 생기기 전까지 법전을 들고 산사(山寺)를 찾는 고시 준비생들이 적지 않았다. 평지에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곳을 찾을 순 있겠지만, 힘들게 능선을 오른 건 예사롭지 않은 산의 정기(精氣) 때문이리라. 이 책은 방대한 고문헌과 실제 답사를 바탕으로 산의 의미를 풍수지리 등 인문학으로 풀어냈다. 지리학을 전공하고 풍수지리로 학위논문을 쓴 최원석 경상대 교수(51)는 20여 년간 줄곧 산만 연구했다. 현재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지리산권 문화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얼마 전 설악산과 베트남의 오행산을 다녀왔다는 최 교수를 인터뷰했다.

―인문학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산을 인문학으로 풀어낸다는 게 생경하다.

“산을 자연생태학이 아닌 인문학적 시각으로 연구한 건 흔치 않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산에 대한 인문학 전통은 대단하다. 서양과 달리 사람과 자연이 하나라는 합일(合一)의 정신이 있어 사람과 산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산을 탐구하면 인간의 삶이 보이고, 그게 바로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풍수가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우리만의 차별성이 있는가.

“예컨대 각 고을에서 경관이나 취락의 중심이 되는 큰 산을 진산(鎭山)이라고 하는데 우리와 중국의 진산 개념이 매우 달랐다. 중국에선 명·청대까지 산세가 웅장하고 기이해 유명한 몇 개의 산만 진산으로 봤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 중기에 전국 331개 고을 중 255개에 진산이 있었을 정도로 흔했고 마을과도 5리 이내로 가까웠다. 또 형태나 높이도 평범했다. 그만큼 인간의 삶과 밀착된 친근한 개념으로 산을 바라본 것이다.”

―책에 시간이 흐를수록 산이 인간화됐다는 얘기가 있던데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에선 산의 개념이 ‘천산(天山)→용산(龍山)→조산(造山)’의 순서로 진화했다. 유사 시대 이전에는 단군 신화에서 보듯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천산이 중심이었다. 세월이 흘러 농경시대가 시작되고 치수(治水)가 중요해지자 산과 하천이 만나는 용산이 대두된다. 배산임수의 주거를 꾸리면서 산의 부족한 형세를 메우려고 흙을 옮기고 나무를 심은 것이 조산이다.”

―부족한 형세를 채운다는 게 무슨 뜻인가.

“경남 김해시에 가면 임호산(林虎山) 중턱에 사찰 하나가 있다. 이곳이 지어진 이유가 흥미로운데 주민들은 임호산을 험상궂은 호랑이가 고을을 보고 걸터앉은 형상으로 봤다. 그래서 이 산의 흉한 모습을 누르기 위해 호랑이의 아가리 부위에 사찰을 지었다는 얘기다. 마치 병이 들었을 때 혈맥을 찾아 침을 놓는 이치와 비슷하다.”

―다른 문명권에는 조산이란 개념이 아예 없나.

“그렇지 않다. 조산 문화의 본보기는 다른 지역에도 있다. 가장 오래된 건 기원전 22세기 고대 메소포타미아가 만든 ‘지구라트’다. 이 지역은 평지였기 때문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길 바란다는 염원으로 일종의 인공 산인 지구라트를 쌓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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