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족 이경검, 장남 아닌 딸한테 저택 물려준 까닭은… “어린 딸에게 한 失言이라도 지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1일 03시 00분


장서각, 재산상속문서 ‘分財記’ 공개

1596년 조선 왕족이었던 이경검이 아홉 살짜리 딸효숙에게 25칸짜리 저택을 물려주겠다고 한 ‘이경검 부부 별급문기’ 원문. 그는 “어린 딸에게 집을 주겠다고 한 것이 실언이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며 저택을 줬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공
1596년 조선 왕족이었던 이경검이 아홉 살짜리 딸효숙에게 25칸짜리 저택을 물려주겠다고 한 ‘이경검 부부 별급문기’ 원문. 그는 “어린 딸에게 집을 주겠다고 한 것이 실언이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며 저택을 줬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공
“비록 내 어린 딸에게 무심코 건넨 실언이지만 약속대로 집을 사주겠다.”

1596년 성종의 4대손으로 임진왜란 공신이었던 이경검은 분재기(分財記·재산 상속문서) 한 장을 썼다. 당시 9세에 불과한 어린 딸 효숙에게 한양 명례방(明禮坊·지금의 서울 필동)에 있던 25칸짜리 저택을 물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한산 이씨 종가의 분재기인 ‘이경검 부부 별급문기(李景儉 夫婦 別給文記)’를 번역해 최근 공개했다. 분재기에 따르면 장자 상속의 원칙을 깨고 이경검이 어린 딸에게 비싼 저택을 물려주게 된 사연이 이채롭다.

이경검은 딸 효숙을 무척 아꼈다. 그는 임진왜란으로 부서진 집을 고치면서 딸을 업고 다니며 공사를 감독했다. 그는 어느 날 집에 들어서며 딸에게 “수리를 마치면 이 집을 주겠다”며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효숙은 이를 진심으로 믿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집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이를 물정 모르는 딸의 애교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이경검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주(周)나라 성왕 때 고사를 언급하며 “부모와 자식 간의 믿음보다 중한 게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말실수라도 딸이 약속으로 받아들였다면 지켜야 한다”고 선언했다. 주 성왕은 어린 시절 동생과 소꿉놀이를 하다가 농담으로 동생을 제후로 봉하겠다고 했고 이후 왕위에 오른 뒤 그 말을 지켜 드넓은 땅을 내주었다. 이경검도 바로 분재기를 작성했다.

혹시 자식 간 재산 분쟁이 불거질 것을 대비해 분재기 끝에 ‘자식들은 이 상속에 불평을 품지 말라’는 단서조항을 두고 장남인 안국의 수결(사인)까지 받았다.

이로부터 9년 뒤 효숙은 영의정 이산해의 손자인 이구와 결혼하면서 이 집을 혼수로 가져갔다. 22세에 남편을 잃은 그는 1636년 충남 예산군에 마을을 개척하고 새로 집을 짓는 등 여장부로서 삶을 살았다. 효숙이 예산에 지은 집이 ‘수당고택(修堂古宅)’으로 그의 10대손이자 구한말 항일 운동가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수당 이남규(1855∼1907)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장서각#재산 상속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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