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서 나무가 쑥쑥 자라는 집(‘화분’), 정면을 향한 채 팔을 비틀어 뒤쪽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남자(‘피아노맨’).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상상한 대로 그린 듯 자유분방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작은 강박이 눈에 띈다. 긴 면발을 입에 넣는 ‘스파게티’나 뚝딱뚝딱 못질을 하는 ‘빌더’ 속 사내 모두 검은 정장에 넥타이, 검정 구두를 신고 있다. 23번째 개인전 ‘크라운(CROWN)’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정장 차림’에 대해 문형태 작가(38)는 “삶의 자세”라고 짧게 설명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다보니 감이 잡혔다. 문 작가는 그림 그리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적은 벌이로 여섯 식구를 먹여 살렸던 아버지는 새벽에 귀가하면 고단한 몸을 씻고 붓을 들었다. “아버지는 속옷 차림에 목엔 수건을 두르고 그림을 그리셨어요. 그 모습이 멋있었죠. 아버지 덕분에 그림은 항상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고 살아요.”
무엇을 하든 한결같이 그림의 꿈을 품고 사는 부자(父子)의 마음이 정장으로 표현된 것일까. 작은 배로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작품 ‘바람’ 속 남자는 정장을 차려입고 붓까지 들었다.
서로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칭찬해주자는 뜻에서 전시 제목을 ‘크라운’으로 달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사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그리고 싶다’고 느꼈으면 해요. 그게 제겐 최고의 칭찬입니다.”
32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24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길 청안갤러리에서 이어진다. 02-776-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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