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다. 게다가 국지성 호우까지. 계절은 한여름의 정점을 달리고 있다. 이런 날, 1300도의 용해로와 화덕을 오가며 단단한 놋쇠를 수천 번 두드려 황금빛 그릇을 만들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이봉주 장인(88·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명예유기장)과 아들 형근 씨(55)다. 30여 년 전 제자의 실수로 눈에 쇳조각을 맞아 오른쪽 시력을 잃고도 길을 바꾸지 않은 70년 외길인생 장인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납청유기촌, 펄펄 끓는 쇳물을 둥그런 물판에 붓자 공방은 금세 수증기로 가득 찬다. 공방 한쪽엔 치솟는 불길 속에 방짜 유기 금속판을 넣어 달구는 작업이 한창이다. 달구어진 쇠를 한 번에 메질할 수 있는 시간은 30∼50초에 불과하기 때문에 숙련공에게도 고도의 집중이 요구된다. 다양한 형태의 놋쇠그릇을 만드는 공방 안엔 화염과 뜨거운 열기, 기계음이 뒤섞여 있고 잠시라도 한눈팔 수 없는 긴장이 흐른다.
유기는 방짜와 반방짜, 주물로 나뉘는데 방짜 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와 22%로 섞어 여러 명이 수천 번 메질을 해 만든다. 표면이 매끄러운 주물 제품과 달리 방짜 유기는 메 자국이 은은하게 남아 있어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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