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관객 1400만 돌파… ‘아바타’ 제치고 국내 역대 흥행 1위 등극
[전문가 좌담]명량 흥행과 1000만 영화 의미
현실의 절박감 16세기 위인에 열광
민족적 DNA 자극은 천만영화 공통
화려한 해상전투신 한국영화 새 장
평면적 캐릭터-이야기 밀도는 아쉬움
블록버스터 위주 상영관 독점 현상
영화산업 허리 중간규모 영화 위협
전문가들은 흥행 역사를 새로 쓴 영화 ‘명량’의 만듦새와 마케팅 방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왼쪽부터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윤성은 영화평론가,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명량’이 16일 누적관객 1398만8507명을 동원해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2009년·1362만 명)를 제치고 국내 흥행 영화 1위를 차지했다. 명량의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명량의 누적 관객 수가 개봉 18일째인 이날 오전 1362만 명을 넘어 ‘아바타’의 기록을 깼다”고 밝혔다. ‘아바타’가 개봉 후 두 달이 지나 1300만 관객을 모은 것과 비교하면 지난달 30일 개봉한 ‘명량’의 흥행속도는 전례가 없다. 명량은 개봉 19일째인 17일 1400만 관객을 넘어서며 1500만 관객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이 한국인들을 명량의 상영관으로 불러낸 걸까.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50),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48), 윤성은 영화평론가(36)가 한자리에 모여 영화의 흥행 원인과 역대 1000만 영화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짚었다. 》
―명량이 이번 주 초 15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편장완 원장=우리나라 5000만 인구 중 영화를 볼 수 있는 인구는 1500만 명 정도다. 이 사람들이 다 명량을 본 셈이다. 이를 영화의 힘으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세월호 사고, 윤 일병 사건 등 최근 사회적 이슈가 영향을 미쳤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불신하고 기성세대는 그동안 변한 게 없다는 사실에 열패감을 느낀다. 위로가 필요한 대중에게 이순신이라는 슈퍼히어로가 나타난 것이다. ▽이명진 교수=이순신이 집중적으로 조명된 것은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이다. 명량 속 이순신도 민주적인 21세기형 리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기대했던 21세기와는 다르다. 많은 사람이 중요한 역사적 경험으로 1998년 외환위기를 꼽는다. 몇 년 뒤엔 세월호를 이야기할 거다. 이제 좀 잘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즈음 경제위기가 닥쳤고 세월호로 사회의 민낯을 봤다. 16세기 인물이 부각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절박하다는 게 아닐까.
▽윤성은 평론가=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명량을 모두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김한민 감독이 ‘갈등이 팽배한 사회에 구심점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하던데 성공했다. 통쾌하게 끝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금까지 한국식 영웅을 다룬 영화들이 ‘한(恨)’을 기본 정서로 한다면 명량은 승리를 부각했다.
―작품의 만듦새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편=자칫 뻔해 보일 수 있는 위인을 영화화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는데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다만 캐릭터들이 평면적이고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진다. 해전 장면에서도 적군이 너무 쉽게 물러서더라. 해외시장에 진출했을 때 상업영화로서 얼마나 호응을 끌어낼지 의문이다.
▽윤=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본다. 주인공 이순신을 미화하기보단 인간적인 면모를 함께 다뤘다. 또 후반부 해상 전투에서 나타난 리듬감 있는 편집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시도였다.
―명량을 두고 애국심 마케팅이라는 얘기가 있다. 국내 1000만 영화 중에는 민족주의나 애국을 강조한 작품이 많다.
▽이=한국을 포함해 동북아시아 내 민족주의가 강화하는 흐름이 있다. 명량은 한일전에 비유하자면 우리 편 한두 명이 퇴장당했는데 이긴 거다.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편=내셔널리즘은 1000만 영화의 단골손님이다. 여기에 남북 분단과 가족주의도 1000만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1000만 관객을 모으려면 민족적 DNA를 움직여야 한다. 이데올로기가 빠진 장르물은 한계가 있다.
―1000만 영화가 등장한 것은 2003년 ‘실미도’부터다. 이후 1000만 한국영화 10편이 나왔다.
▽편=대중문화 전반에서 사극 증가가 눈에 띈다.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사극은 역사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고 볼거리도 풍부하다. 실제 일어난 일이니 이야기도 더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다.
▽윤=영화산업이 성장하면서 기획의 역할이 커졌다. 최근 흥행 영화들은 기획 단계부터 사회의 분위기나 변화를 잘 읽어낸다. 명량은 퓨전사극에서 정통사극으로 변하는 트렌드를 감지했고, 좋은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갈망도 간파했다.
―명량 흥행 비결을 이순신 리더십에서 찾는 이가 많다. 최근 1000만 영화 중에는 ‘변호인’ ‘광해’처럼 리더를 다룬 작품이 많다.
▽이=한국사회는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정부 시스템이나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데 이 문제를 기존의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것은 더뎌 보이고, 현실 정치는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리더를 찾는 것 같다.
―명량의 흥행엔 40대의 역할이 컸다. 초반 예매율부터 40대가 20, 30대를 앞섰다.
▽윤=486세대는 인구가 많고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다. 삶의 현장에서 피로도가 가장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재관람률이 높아야 1000만 영화가 되는데 아이 혹은 부모와 재관람한 40대가 많다. 486을 포함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요즘 영화계가 주목하는 세대다. 올 초 800만 관객이 든 ‘수상한 그녀’는 70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흥행에 성공했다.
▽이=베이비붐 세대의 영향력이 문화산업에서도 커지고 있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들이 60세가 넘어서도 청바지를 입고 록 콘서트장에 가듯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명량이 흥행하면서 상영관 독점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편=한국영화 산업 전체의 파이가 커지면 좋겠지만 자칫 ‘그들만의 리그’가 될 위험이 있다. 대형 배급사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에만 힘을 쏟는다. 최근 개봉한 제작비 30억 원 안팎의 중간 규모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이 영화들이 영화산업의 허리인데 큰 영화 중심으로만 가면 장기적으론 위험하다.
▽윤=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독식체제다. 극장에 가면 명량밖에 없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1000만 영화들은 대부분 거대 배급사를 끼고 투자를 받아 개봉했다. 시장에 맡기기보단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규제책이 필요하다. 물론 1000만 영화의 긍정적인 면도 있다.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은 일종의 습관인데, 명량을 보기 위해 10여 년 만에 극장을 찾은 이도 꽤 된다. 이들이 계속 영화관을 찾다 보면 예술영화나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대한 수요도 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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