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사 뒤 마주 앉은 최정화 작가(53)가 갑자기 발치에 놓인 큼직한 비닐 백을 뒤집었다. 가득 담긴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세제, 음료수, 화장품, 식기…. 갖가지 용도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용기 ‘뚜껑’ 무더기다.
“알록달록 아름답죠? 아파트 폐기물 분리수거 통에서 가져온 거예요. 가장 중요한 쓸모를 가진 부분인데, 한 번 열린 뒤에는 바로 버려지죠.”
9월 4일∼10월 19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기획전 ‘총천연색’을 여는 최 작가는 공산품을 모아 재구성한 설치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에는 20m 높이 로툰다(Rotunda·원통 벽체와 돔 지붕으로 이뤄진 공간)를 채운 설치작품 ‘연금술’로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도 즐겨 쓰는 재료 중 하나인 빨강과 초록의 플라스틱 광주리를 엮어 건물 밖에 대형 벽체를 만든다.
“주제어는 ‘꽃’입니다. 꽃의 온도, 꽃의 뼈, 꽃의 거시기, 꽃의 가면, 꽃의 뿌리. 한없이 하찮아 보이는 재료를 긁어모아 엮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지 관객들과 함께 확인하고 싶어요.”
전시 하이라이트는 2층 600m² 공간에 펼쳐질 ‘꽃의 만다라’. 옛 서울역 식당이었던 직사각형 공간을 플라스틱 뚜껑으로 채우는 진행형 참여 프로젝트다. 바닥에 흩뜨린 뚜껑은 이 작품의 시연(試演)이었던 셈이다. 그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뚜껑 뭉치를 보태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뚜껑이 모여 어떤 이미지를 연출해낼지 나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그 결과물이 ‘버려진 공산품은 쓸모없다’는 편견을 덜어 주리라는 거죠. 쾌적한 전시를 위해 깨끗이 한 번 헹궈 가져와 주시길 부탁드려요.” 02-340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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