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솜씨, 지향하는 맛이 조화를 이뤄야 훌륭한 요리다.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은 전시품, 구성, 주제가 균형 있게 어우러진 성찬이다. 2년간 기획하고 3주간 전면 휴관해 얻은 결실이 풍성하다.
1관 1층에 나란히 놓인 마크 로스코의 유채화 ‘무제’(1969년), 14세기 고려 불화 ‘아미타삼존도’와 ‘지장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디에고 좌상’(1965년)은 이 전시가 ‘교감’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전하려 하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로스코는 인간의 감정을 경계 모호한 색면(色面) 회화에 담으려 했다. 1970년 자살할 무렵에는 사회적 명성이 예술 작업의 순수성을 해치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로스코를 곱씹은 뒤 초월적 정신세계를 추구한 불화 앞을 지나 마주하는 청동조각은 단도직입의 자코메티와 다른 방향의 감흥을 안긴다.
서도호 작가는 1관 2층 고서화실에서 신작 ‘우리나라’를 통해 시공을 넘나드는 교감을 표상했다. 집단 속 개인의 역할과 정체성에 주목해 온 그는 18세기 조선 ‘환어행렬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왕의 행차를 주제로 삼았지만 빽빽이 늘어선 인물마다 각자의 몸짓과 표정을 가진 그림. 그 곁에 서 작가가 내놓은 것은 얼핏 가로 130cm, 세로 194cm의 한반도 청동 부조로만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땅을 가득 메운 수십만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용포(龍袍)를 입은 왕, 적삼 걸친 어린아이, 정장 차림의 남자, 지팡이 든 노인…. 예술과 역사의 주인공이 언제나 사람이었음을 유쾌하게 확인시킨다.
1관 4층 청자실에는 보물 1385호인 12세기 고려 청자양각운룡문배병 뒤로 바이런 김의 유채화 ‘고려청자 유약’ 연작 2점을 걸었다. 1993년 미국 휘트니비엔날레에서 다양한 피부색을 그린 394개 연작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청자 비색(翡色)을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한 층 아래 이수경의 ‘달의 이면’은 북한에서 들여온 흑자 파편을 재료로 18세기 조선 ‘달항아리’를 재해석했다.
기획전시실 지하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설치작품으로 채웠다. 재닛 카디프와 조지 뷰어스 밀러의 ‘F#단조 실험’은 1960년대 만들어진 스피커 72개를 제사상 차리듯 늘어놓았다. 관람객이 접근하면 온갖 방법으로 녹음된 F#단조 소리 72가지가 나온다. 갖가지 악기와 함께 노래와 휘파람소리도 들린다. 보는 이의 수와 위치에 따라 한없이 다양한 연주가 빚어진다.
한 층 위에는 중국의 아이웨이웨이가 보내온 ‘나무’ 다섯 그루를 늘어 세웠다. 작가는 그루당 약 2t 무게의 죽은 고목을 잘라 흩뜨린 뒤 다시 짜 맞췄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기워낸 나무의 형상이 지금의 중국을 대변한다는 설명이다. 그 뒤쪽 공간에서는 문경원과 전준호의 20분짜리 영상 ‘q0’가 상영된다. 리움 소장품인 ‘금은장 쌍록문 장식조개’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엮었다. 소지섭과 정은채가 노개런티로 주연을 맡았다.
2관은 짧은 시차를 두고 유사한 가치를 추구한 서구와 국내 작가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 동서의 교감을 드러냈다. 기획전시실과 로비를 연결하는 ‘카펫 위의 머리카락’은 무심히 지나치기 쉽다. 이세경 작가가 엮은 ‘쓸모없는 것의 아름다움’을 발로 밟으며 확인할 수 있다. 12월 21일까지. 5000∼1만 원. 02-2014-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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