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은 ‘해무’에 대해 “이렇게 모든 출연배우가 기대 이상으로 제몫을 다해준 경험은 처음이었다”며 “이번 작품은 평생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바다안개가 자욱한 망망대해에 홀로 뜬 배 ‘전진호’는 사회의 축소판일 수도 있습니다. 삶이 선택이 아닌 상황에 따라 흘러가는 절박함이 곳곳에서 묻어나죠. 거기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직면할 수 있지 않을까요.”
13일 개봉한 영화 ‘해무’에서 주인공인 ‘철주’ 역을 맡은 김윤석은 살짝 엄한 학교 선배 같았다. 간간이 농도 던지지만, 헐렁하게 대했다간 금세 꾸중이 날아올 것 같은. ‘돈 잘 버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살고 있나’를 물을 듯한 그에겐 거친 바다를 헤치고 온 선장의 ‘짠내’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영화가 밀도 있고 무겁다.
“원했던 대로 작품이 나왔다.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이야기가 묵직하게 울린다. 해무는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청량음료마냥 탁 쏘는 맛은 없다. 하지만 그 시원함은 잠시일 뿐, 결국 다시 목이 타지 않나. 해무는 삼키기 쉽지 않지만 여운이 오래갈 것이다.”
―잔인한 장면은 없는데 이상하게 섬뜩했다.
“그게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선원들의 행동이 멀리서 보면 극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죄일까. 전진호엔 어떤 악당도 없다. 시대가 죄인이고 상황이 악인이다. 극중인물들의 선택에 공감하건 아니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바다안개를 닮은 여백이야말로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실제로 사운드나 상황으로 분위기를 만들 뿐, 직접적인 잔인한 묘사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심오한 연극 한 편을 본 기분이 들었다.
“원래 연우무대의 연극이 원작이라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출연진도 대부분 연극배우 출신이고. 그래서인지 박유천을 포함해 모든 배우의 호흡이 아주 좋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갑판이 무대처럼 나무 바닥이라 느끼는 질감도 비슷했다. 발소리도 저벅저벅 울렸고. 바다에서 촬영하니 카메라 들이대는 구경꾼이 없어 몰입도가 끝내줬다.”
―어떻게 이 영화를 선택했나. 그간 맡은 역할이 대체로 평범하지 않다.
“원작에 대한 신뢰감이 높았다. 심성보 감독과 봉준호 제작자도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연극을 영화화해본 경험이 있다(심 감독은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각본에 참여했다). 극단적 역할만 선호하는 건 아닌데…. 그보단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 현실이 제대로 투영되는지에 주목한다. 가벼운 코미디라도 삶에 대한 고찰이 어설프지 않게 담겨야 한다. 진실한 이야기가 중심을 잡아야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심성보, 봉준호 감독과 궁합은 어땠나.
“심 감독은 겉만 보면 섬세하고 연약하다. 하지만 내적으로 강하고 지독하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치밀함을 지녔다. 봉 감독은 별로 좋은 제작자가 아니었다. 돈 아낄 생각은 안 하고, 계속 현장에 와서 배우들 술값 대느라 바빴다. ‘설국열차’ 해외 프로모션으로 바빴을 텐데, 참 고마웠다.”
―성수기 오락영화 시즌에 너무 심각한 영화란 평도 있다.
“그런 고정관념은 버릴 때가 됐다. 2008년 ‘추격자’는 2월 비성수기에 당시엔 기피 장르였던 스릴러로 500만 명을 넘겼다.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의미 있는 작품을 보는 게 가치 있지 않나. 먼 훗날 내 영화 인생에서 해무는 가장 자랑스러운 필모그래피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볼수록 새로운 뭔가를 깨친다. 그 감흥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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