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창업모델로 더 적합하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 열풍이 불면서 청바지를 입은 젊은 천재가 창고에서 창업을 하는 게 일종의 성공신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 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창업 성공론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나이가 들어도, 아이디어가 없어도, 전문성이 없어도 창업에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를 한 척도 짓지 못한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에게 ‘거북선’ 그림이 그려진 당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든 정주영의 배포가 잡스의 천재적 아이디어보다 성공의 관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본문에 “창업자가 갖춰야 할 필수요소인 고된 노력과 야망, 파격적인 사고방식, 영업능력, 리더십은 아이디어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썼다.
예컨대 1995년 멕시코에 멀티플렉스 영화 체인을 세워 3억 달러에 판 미겔 다빌라와 친구들의 창업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멀티플렉스가 대중화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업 아이템은 혁신성이 제로에 가까웠다. 게다가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로 환율까지 요동을 쳤지만 이들은 오히려 투자 규모를 늘려 ‘속도전’을 펼쳤다. 경쟁자들이 자금난에 몰려 소극적으로 대응한 반면, 이들은 파산 위기에도 공격적으로 베팅했다. 그 결과 경쟁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들은 시장을 확실히 선점할 수 있었다.
‘멀티플렉스는 이미 레드오션이다’ ‘금융위기에 투자를 늘리는 건 자살 시도’라는 등의 통념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성공한 창업가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곳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선두주자의 혁신성을 재빨리 모방하는 삼성전자의 카피캣 전략조차 폄훼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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