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20세기는 정말 최악의 시대였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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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거 지음/김명남 옮김/1408쪽·6만 원/사이언스북스

중세 때의 살인과 폭력은 요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15세기 독일의 한 기사가 묘사한 연작 그림 ‘중세 가정의 책’에서는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횡행했는지 볼 수 있다. 그림 왼쪽 위에는 교수대가 있고 그곳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보인다. 교수대에는 이미 목이 매달린 사람이 있다. 왼쪽 중간엔 남녀가 차꼬(죄수를 가둬 둘 때 쓰던 형구)를 차고 있다. 이는 특별한 날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중세 때의 살인과 폭력은 요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15세기 독일의 한 기사가 묘사한 연작 그림 ‘중세 가정의 책’에서는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횡행했는지 볼 수 있다. 그림 왼쪽 위에는 교수대가 있고 그곳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보인다. 교수대에는 이미 목이 매달린 사람이 있다. 왼쪽 중간엔 남녀가 차꼬(죄수를 가둬 둘 때 쓰던 형구)를 차고 있다. 이는 특별한 날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저자 스티븐 핑거
저자 스티븐 핑거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다!’

에이 말도 안 돼. 저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나. 히틀러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비롯해 2100만 명을, 스탈린 소련이 6200만 명을, 중화인민공화국이 3500만 명을, 중국 국민정부가 1000만 명을, 일본 군국주의가 6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았나. 사회학자 러멜이 국가 살해로 계산한 숫자만 1억7000만 명인데….

20세기는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처럼 대량 학살을 뜻하는 말이 새로 생겨날 정도로 인류의 이성이 마비된 가장 폭력적 세기였다는 것이 굳은 믿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 마음 3부작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각종 통계와 역사적 자료를 들이대며 이런 신념이 오류임을 밝힌다. 인류 탄생 이후 폭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고 이는 대규모 학살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가해까지 모든 폭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가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실제 폭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폭력의 존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손쉽게 접하고, 폭력을 나쁘다고 느끼는 감수성이 어느 시대보다 민감하며, 피비린내 나고 잔혹한 과거의 사건과 일상에 대해 잘 모르는 ‘역사적 근시안’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에 폭력적 사망 건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수를 감안할 때 사망 비율은 20세기가 결코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600년대의 전쟁과 20세기 중반의 전쟁을 비교하려면 1600년대의 사망자 수에 4.5를 곱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은 뜻밖에도 8세기 중국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과 그로 인한 내전이었다.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당시 중국 인구의 3분의 2인 3600만 명이 희생됐고 이는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었다. 이를 20세기 중반 인구 비율로 맞추면 무려 4억2900만 명이다. 저자는 사회학자 러멜의 자료를 이용해 20세기 이전 16건의 집단살해에서 무려 1억3314만 명이 숨졌다고 지적했다. 이 수치도 비교적 정확한 자료로 남아 있는 것만 정리한 것이다.

일상 속의 폭력이나 살인도 마찬가지다.

간통한 남편을 둔 무고한 아내는 코가 잘렸고 속치마를 훔친 일곱 살짜리 소녀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마녀는 톱으로 몸을 반으로 자르는 형벌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걸 가장의 당연한 권리로 여긴 곳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법으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저자는 폭력이 역사적으로 지역을 불문하고 감소해 왔다는 건 그만큼 인류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어도 좋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폭력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악마(포식성 우세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를 누르고 네 가지 천사(감정이입 자기통제 도덕감각 이성)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20세기 집단학살의 주범인 전체주의 체제, 즉 나치즘과 공산주의의 쇠퇴는 이런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전체주의 체제는 20세기 국가학살 사망자 1억7000여만 명 가운데 82%인 1억3800만 명을 죽였고, 이 중 공산주의 체제가 1억1000만 명(전체의 65%)이었다. 전성기 때 공산주의 체제는 “계란을 깨야 오믈렛을 만든다”며 폭력을 옹호했지만 하버드대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는 “인간이 계란이 아닌 건 차치하고라도 그 살육에서 오믈렛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체제, 이성, 인도주의, 과학의 힘 등이 늘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론 이를 토대로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를 끄집어내 남은 폭력마저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거#폭력#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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