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 썼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종횡무진하며 인류 문명을 창조한 동력이 ‘생각’이고 앞으로 살길도 생각하는 힘이라고 역설한 뒤 생각의 힘을 기르는 노하우까지 일러준다.
생각의 산물이 지식인데, 인류의 지식 탐구는 지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고 남을 설득하려는 실존적 욕망에서 시작됐다. 생존법으로 진화를 택한 동물과 달리 인간이 지식을 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지식의 학습은 빠르고 유연해 더디게 진행되는 진화와 다르게 급격한 환경 변화에도 적응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유용한 생각의 도구로 기원전 8세기 그리스에서 유래한 은유, 원리, 문장, 수(數), 수사(修辭) 등 5가지를 꼽는다. 이 중 으뜸은 은유다. 여기서 은유란 직유 환유 제유 풍유 상징을 구분 않고 통틀어 말한다. ‘시간은 돈이다’처럼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간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非)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낸다.
모든 생각의 모태가 되는 은유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저자는 시(詩) 읽기와 ‘주머니 훈련법’을 추천한다. 주머니에 단어 카드를 넣고 섞은 뒤 아무거나 2장을 골라 ‘A는 B다’는 문장을 만든다. 예를 들어 ‘책’과 ‘여행’이 적힌 카드를 골랐다면 ‘책은 여행이다’ ‘여행은 책이다’는 문장이 된다. 책과 여행의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표현력과 설득력은 물론이고 창의력까지 키울 수 있다.
‘유사성’은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다. 정보 시대에 저자가 생각의 도구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근대적 이성의 바탕이 되는 동일성이 아니라 유사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같음과 다름을 모두 끌어안는 유사성은 유연하고 유능하며 창조적이다. 이는 동일성을 기준으로 범주화하는 컴퓨터가 따라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유사성을 근거로 작동하는 뇌와 동일성을 근거로 작업하는 컴퓨터, 이렇게 뇌 2개를 함께 가지고 살자는 제안이다.
그런데 문학 수학 건축 천문학이 훨씬 앞서 발달했던 고대 수메르 이집트 바빌로니아인들을 제치고 왜 생각의 도구가 그리스에서 유래했을까. ‘그리스에선 학문이, 중국에선 삶의 지혜가 발달했다’ ‘이집트에는 무덤이, 그리스에는 극장이 있다’는 명언들이 힌트가 된다.
책 뒤쪽에 모아둔 35쪽 분량의 각주에서 대부분 해외 문헌을 인용하면서도 실제로 참고한 번역본을 정직하게 밝힌 것도 미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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