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백남준만 있는게 아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일 03시 00분


中 항저우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이용백 작가의 미디어아트 ‘브로큰 미러’(2011년). 침체기인 항저우 현대미술계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이용백 작가의 미디어아트 ‘브로큰 미러’(2011년). 침체기인 항저우 현대미술계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탕, 쨍그랑, 와장창….

조용한 미술관을 채우는 총소리와 유리 깨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 현대미술의 발원지이나 남송(南宋)시대 수도로서 전통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항저우(杭州) 시를 도발하는 총성이다.

학고재 갤러리와 중국 싼상(三尙)당대예술관 주최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8일까지 저장(浙江) 성 항저우 시 싼상당대예술관에서 열리는 ‘한국현대미술: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은 거울에 총알이 날아와 박히는 이용백 작가(48)의 ‘브로큰 미러’를 포함해 12명의 작품 35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백남준(1932∼2006)부터 중견작가인 이세현(47)과 젊은 세대인 오윤석(43) 장종완(31)까지 다양한 세대의 작가와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로는 중국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다.

전시가 주는 묘미는 신구(新舊) 세대 간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와 여기서 오는 긴장감을 읽어내는 데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철판과 돌이 마주 보고 있는 이우환의 설치작품 ‘관계항’이 관객을 맞는다. ‘관계항’의 정적인 미감(美感)은 이어지는 동선에 전시된 홍경택(46)의 유화 ‘펜3’의 역동적인 미감과 대조를 이룬다.

사진작가 김아타의 ‘뮤지엄 프로젝트#149-니르바나’(2001년). 학고재갤러리 제공
사진작가 김아타의 ‘뮤지엄 프로젝트#149-니르바나’(2001년). 학고재갤러리 제공
백남준이 1995년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낡은 TV모니터는 남북 이념갈등을 다룬 김기라(40), 가부장적인 사회의 불편함에 대해 얘기하는 여성작가 박지혜(33)의 비디오아트와 나란히 놓였다. ‘모두가 부처’라는 메시지를 담은 김아타(58)의 사진작품은 성형에 중독된 여성을 보여주는 권순관(41)의 사진과, 현대적 감각의 한국화로 일상성을 파고드는 유근택(49)의 그림은 짐승의 가죽 위에 신선도를 그려낸 장종완의 회화와 한자리에 걸렸다.

미술관을 찾은 중국 관객들은 특히 이용백의 미디어아트를 흥미로워했다. 마주 보고 걸려 있는 대형 거울 사이에 서면 어디선가 굉음과 함께 총알이 날아와 거울에 박히고, 깨지는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과 함께 중국의 양대 미술대학으로 꼽히는 항저우 중국미술학원의 루안웨라이(阮悅來) 교수는 “이용백의 작품은 소리와 이미지를 통해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한다. 한국엔 백남준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미술 전문 월간지 ‘예술당대’의 쉬커(徐可) 부주간은 “냉면을 소재로 남북문제를 풀어내고, 가죽을 동양화의 재료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기획을 맡은 윤재갑 상하이 하오아트 뮤지엄 관장은 “항저우 작가들은 1985년 전통화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기를 들고 현대미술을 시작했지만 전통을 넘어서지 못하고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들에게 한국 현대미술 작품들이 적지 않은 자극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항저우=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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