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나 그렇듯 음악가들의 사회에도 매끄럽지 못한 사이들이 있었습니다. 19∼20세기 전환기 세계 오페라계를 대표했던 이탈리아의 자코모 푸치니와 이 시대 빈 국립오페라 감독으로 재직했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도 그랬습니다.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싸우거나 고소전을 펼친 일은 없습니다. 말러는 함부르크 오페라극장 감독 시절 푸치니의 첫 오페라인 ‘빌리’를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말러는 이후 푸치니에 대해 “화성학도 모르는 자가 관현악법을 쓴다”고 비웃었습니다.
푸치니가 말러를 공격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푸치니와 자주 다투면서도 평생 돕는 관계였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말러와 사이가 나빴습니다. 말러는 빈 국립오페라 감독을 사임한 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지휘자로 초청되었는데, 2년 뒤 토스카니니에게 밀려나면서 뉴욕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말러의 음악에 혐오를 표시했으며, 당연히 지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푸치니의 대리전을 펼쳤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러와 푸치니가 공통적으로 사랑했던 후배 작곡가가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인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입니다. 말러는 코른골트가 열두 살 때 쓴 칸타타를 듣고 매료돼 음악계 곳곳에 그를 소개하고 후원했습니다. 푸치니도 그를 높이 평가하고 후원했으며 자기 작품이 받을 반응에 대해 코른골트와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코른골트는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영화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지휘자 존 모체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인이 말러의 음악을 가깝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말러의 음악적 스타일이 코른골트에게 전해졌고 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친해졌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말러와 푸치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준재 코른골트. 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에 나오는 ‘마리에타의 노래’와 ‘피에로의 춤 노래’를 오늘(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가 연주합니다. 1월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스베틀린 루세브 악장이 서울시향과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바도 있으니 올해는 코른골트가 자주 서울 무대에 오른 해로 기록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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