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섹스가 마침표라면 키스는 쉼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6일 03시 00분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파리정치대학 교수의 ‘입맞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방한 중에 수많은 아이들에게 입맞춤하며 정성껏 축복해줬다. 이 모습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21세기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교황이 환자부터 죄수의 발까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입맞춤을 해주는 ‘직접적 접촉’의 소통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프랑스 ‘철학 매거진’의 편집장이자 파리정치대학(Science PO)의 교수인 알렉상드르 라크루아가 펴낸 ‘입맞춤(프랑스어 원제 ‘Baiser·사진’)’은 흔히 ‘키스’로 불리는 입술을 통한 접촉의 철학과 문화를 고찰한 에세이다.

저자는 어느 겨울날 저녁 아내의 비난을 듣는다. “왜 당신은 내게 충분히 키스를 해주지 않나요?” 그는 머릿속에 ‘쿵’ 하는 느낌을 받고 왜 이러한 매우 간단한 행위가 내겐 쓸모없고 어렵다고 느껴졌는가를 생각한다.

그는 고대 로마시대 문헌부터 할리우드 영화, 르네상스 시대의 시와 프로이트의 심리학까지 종횡무진 오가며 ‘키스’에 담긴 비밀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입술을 통한 접촉은 에로틱한 행동 이전에 종교적 사회적 의미가 더 컸다고 지적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이라 믿은 고대인들은 입맞춤을 통해 상대방의 영혼을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키스의 세속화가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예기치 않은 선물’이라는 지적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가족끼리 혀를 내밀지 않고 입술만 접촉하는 ‘바시움(basium)’, 원로원과 같은 사회조직에서 존경의 뜻으로 키스하는 ‘오스쿨룸(osculum)’, 입술을 벌린 채 관능적으로 하는 연인들의 키스인 ‘수아비움(suavium)’ 등 다양한 입맞춤을 즐겼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로마인들의 입맞춤 문화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성스러운 키스를 보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후 키스는 기독교의 공식 인사법이 됐다. 지금도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교황의 슬리퍼, 주교의 고리, 성인의 유물 등에 축복의 입맞춤을 하는 관습이 남아 있다.

그런데 13세기 초에 교황 이노센트 3세는 교회 안에서 키스를 금지시켰다. 이 조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키스에 담긴 성스러운 의미를 제거함으로써 키스가 세속화되고 일상생활에서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키스는 수많은 예술작품에서 열렬한 숭배의 대상이 됐다. 1934∼54년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유일하게 허용된 것이 키스였다. 키스에 대한 할리우드의 ‘컬트적 숭배’는 키스가 글로벌 문화로 확대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저자는 부부나 연인 간의 사랑을 재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키스라고 단언한다. 섹스는 사랑 없이도 가능하지만, 키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키스는 ‘욕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과 사랑에 관한 문장에서 섹스가 마침표라면, 키스는 숨을 쉬도록 해주는 쉼표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알렉상드르 라크루아#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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