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노비의 신분 상승史로 본 ‘조선의 세세한 일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6일 03시 00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권내현 지음/204쪽·1만2800원·역사비평사

“개똥아….”

당신은 막 태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허름한 단칸방…. 부모님은 조선시대 노비다. 당시 노비에게는 개불알, 거시기 등 천한 이름을 붙였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 노비 중 다수는 신분적 억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종으로 살아갔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됐다. 하지만 일부 노비는 다른 꿈을 꿨다. 어떻게든 재물을 모아 합법적으로 신분을 상승시키는 전략을 구사한 것.

이 책에서 소개된 ‘김수봉’이란 노비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저자는 17∼19세기 호적대장을 분석해 양반이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김수봉 일가의 험난한 여정을 추적했다.

결과부터 말한다면 김수봉은 ‘성공’했다. 1678년 노비였던 그는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며 틈틈이 수공업을 하거나 남의 토지를 경작해 재산을 모았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토지, 나아가 노비까지 거느리게 된다. 이후 김수봉은 국가에 곡식을 바쳐 노비 신분에서 벗어났다. 기근이 잦았던 숙종 때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돈 곡식 등을 받고 노비 면천 문서를 발급한 것. 김수봉의 아들들은 1717년 평민으로 호적에 올랐다. 김수봉 손자들은 중인층으로 이동했고 증손자대에서는 벼슬을 얻지 못한 양반, 즉 유학(幼學)에까지 오른다. 이 책은 김수봉과 그 후손들이 신분을 바꿔가는 과정을 통해 조선시대의 세세한 일상과 계층의 붕괴, 계층 간 호칭 차이, 노비의 현실 등을 보여준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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