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 미술평론가로 돌아온 이용우 씨는 “광주 비엔날레와 같은 세계적인 이벤트가 성숙하려면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홍성담 사태 이후 윤장현 광주시장이 비엔날레의 이사장에서 명예이사장으로 물러나고, 앞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고 발표한 원칙을 지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20년 전 제가 공동으로 창설했던 행사인데, 성년식을 준비하다가 그 성년식 때문에 그만두게 됐네요. 예술이 과도하게 정치화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광주 비엔날레가 개막한 5일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62)는 짐을 쌌다.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풍자한 그림으로 ‘홍성담 사건’이 터지자, 이에 책임을 지고 개막까지 마무리해놓고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지킨 것이다.》
그는 1993년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을 기획해 한국에 비엔날레를 처음 소개했고, 고려대 미술교육과 교수 시절이던 1995년 강운태 당시 광주시장의 제안으로 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을 맡아 광주 비엔날레를 창립했다. 10주년이던 2004년엔 예술총감독을 맡았고, 2008년 상임부이사장, 2012년 대표이사로 자리를 바꿔 앉으며 광주 비엔날레를 세계 200여 개 비엔날레 중 5위로 키워냈다. 아시아 지역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로는 최고 순위다.
그는 광주 비엔날레의 고속 성장 비결에 대해 “현대미술 전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담론이 생산되고 교류되는 플랫폼이 되도록 애썼다”며 “나는 광주 비엔날레의 20년 역사에 기여한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광주 비엔날레가 국제적인 지명도를 얻기까지는 영국 옥스퍼드대 미술사 박사인 그의 세계적인 인맥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지난해 3월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비엔날레협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광주에서 열리는 행사인데 정작 광주 미술계는 소외된다’는 불만과 함께 ‘글로벌화에는 성공했으나 지역화엔 실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는 “백남준이 ‘애국하면 망한다’고 했듯 광주 비엔날레에 광주가 보이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미디어아트의 세계적인 거장인 백남준(1932∼2006)은 진정한 애국이란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유명하고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라는 뜻에서 이 말을 했다. “글로벌과 로컬 논쟁에서 전제해야 할 것은 지역과 세계가 양분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글로벌이란 로컬을 전제로 해야 하듯 지역주의 자체만을 주장하는 협소한 지역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동아일보 사건기자로 광주에서 희생자들을 취재했던 그는 ‘광주정신의 세계화’도 주장했다. 그가 사퇴하는 계기가 됐던 20주년 기념 특별 프로젝트는 ‘광주정신’을 상생과 치유를 위한 미래적 가치로 발전시켜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5·18 당시 시민군의 문화선전대로 활약하고 제1회 광주 비엔날레에도 참여했던 스타작가 홍성담 카드를 꺼내든 것. 홍 작가는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풍자한 ‘세월오월’을 불쑥 내놨고, 비엔날레 이사장인 윤장현 광주시장은 이 그림의 전시에 난색을 표명해 검열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홍 작가는 스스로 전시를 철회했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광주시로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광주 비엔날레는 글로벌한 잔치인 만큼 국가원수를 풍자하는 작품이라면 더욱 걸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광주정신을 1980년대 광주에만 묶어둘 것이 아니라 이제는 놓아주어야 합니다. 일각에선 ‘5·18 때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고 광주정신의 갑을 논쟁도 하는데, 광주정신을 사유화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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