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에 한 번은 ‘사고’를 쳤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작품, 위험하다고 말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998년 ‘더 라이프’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들여온 작품이었다. 그 이전까지 한국은 외국 작품을 몰래 베껴 무대에 올리고는 얼른 막을 내렸다. 2000년 ‘렌트’를 한다고 할 때는 작품의 소재가 너무 파격적이라 우리 관객의 정서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고들 했다.
‘아이다’는 제작비가 무려 158억 원으로 나조차도 망설였던 작품이었다. 올해 무대에 올렸던 ‘고스트’는 그보다 더 많은 제작비가 들었다. 이렇게 위험한 도전을 하다보니 실패한 작품도 많다. 농담 삼아 한국에서 나만큼 많이 성공하고, 나만큼 많이 실패한 프로듀서도 없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가장 아팠던 실패는 2006년 ‘댄싱 섀도우’였다. 차범석 선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이었다. 7년 동안 45억 원을 들인 작품으로 극본, 연출, 음악, 안무 등을 해외 유명 아티스트에게 맡기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평단에서도 한국 창작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당시 내가 받았던 충격은 컸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이렇게 공을 들인 작품에 호응해주지 않는 관객들에 대한 섭섭함, 무대공연 자체에 대한 회의감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우리 신시컴퍼니 식구들을 볼 낯도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큰 공부가 되었지만 그때는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괴로웠다.
그때 내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신 분이 배우 김성녀 선생이다. 선생은 내 제안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출연을 했다. ‘댄싱 섀도우’에서도 극의 중심을 잡아줬고,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엄마’ 역을 맡았다. 이외에도 함께 작업한 작품이 많다. 선생은 좌절하고 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낙담하지 마. 박 대표는 우리 연극계의 희망이야. 충분히 이걸 딛고 일어설 수 있어.”
그러고는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일방적으로’ 통장으로 입금했지만 선생은 끝까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출연료 문제가 아니라 선생의 그런 마음이 앞으로 어떻게 컴퍼니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까 고민하는 내게 큰 용기와 힘이 됐다.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선생은 내가 어려운 도전을 할 때마다 말씀했다. “박 대표, 또 일 저질렀네!”
그러면서 우리 공연들의 티켓 판매 순위를 직접 확인하고 전화로 걱정을 해주고 작품이 잘되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일을 ‘저질러 달라’고 말하면 두 말 없이 동참해줬다. 나는 선생의 말에서 걱정과 기대, 칭찬과 나무람을 한꺼번에 듣는다. 연극계 선배로서 새로운 시도를 해줘 기특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선생이 ‘또 일 저질렀네’라고 말씀하는 것이 좋다.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런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내년에 우리 컴퍼니에서 조정래 선생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아리랑’을 무대에 올린다. 그러면 또 선생은 말씀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