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적신 청춘의 땀과 눈물… 주름 팬 할머니의 어부사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8일 03시 00분


가슴 적시는 다큐영화 2편

“다큐멘터리란 사람들이 봐야만 하는 것들을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최근 방한한 러시아 거장 빅토르 코사콥스키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60만 번의 트라이’(18일 개봉)와 ‘순천’(25일 개봉)은 딱 그런 작품이다. 허나 같은 장르지만 색깔은 다르다. 60만 번의 트라이가 청춘이란 눈부신 태양의 여명을 담았다면, 순천은 누구라도 책 몇 권은 쓴다는 우리네 부모의 인생 황혼을 끌어안았다.

10대 재일조선인 럭비부의 뜨거운 도전을 담은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 덩치는 산만 하고 피부도 까무잡잡하지만, 허연 이를 드러내고 시원하게 웃는 녀석들의 미소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인디스토리 제공
10대 재일조선인 럭비부의 뜨거운 도전을 담은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 덩치는 산만 하고 피부도 까무잡잡하지만, 허연 이를 드러내고 시원하게 웃는 녀석들의 미소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인디스토리 제공
○ 60만 번의 트라이

재일동포 취재를 전담하던 리포터였던 박사유 감독과 재일동포 3세인 박돈사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로 일본 오사카조선고급학교(조고)의 럭비부를 조명했다. 학교명에서 짐작했겠지만 축구선수 정대세 덕분에 익숙해진 ‘재일 조선인’ 학생들이다. 제목의 60만은 일본에 사는 조선인 수. 트라이는 미식축구 터치다운처럼 상대 진영에 공을 가져가 점수를 따는 걸 뜻한다.

오사카조고는 2010년 일본 최고 고교럭비대회인 하나조노(花園)에서 4강에 들며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변변한 샤워장 하나 없고 시의 학교보조금 지원도 끊긴 상황. 그들은 다시 전국우승을 노릴 수 있을까.

1년 동안 카메라에 담긴 부원들은, 진부하나 가장 적확한 표현인 ‘땀과 눈물’을 한없이 쏟아낸다. 정치적 이념이나 민족애 때문에 뛰는 게 아니다. 꿈이 있기에, 함께 부대끼는 게 좋아서, 그저 행복하니까 럭비를 할 뿐이다.

사실 이 작품은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관객들의 성을 채우기엔 짜임새가 헐겁다. 감독의 시선을 너무 대놓고 드러내는 것도 다소 불편하다. 내레이션 역시 굳이 연예인(문정희)이 맡았어야 했나 싶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본질인 ‘실제 현장’이 지닌 에너지가 너무나 강렬하다. 필드를 꽉 채우는 경기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한다. 게다가 유쾌한 기운을 내뿜는 후보 ‘황상현’은 유해진에 버금가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에 나오는 노사이드(No Side)는 럭비의 경기 종료를 일컫는 용어. ‘편이 없어지고 친구가 된다’는 의미다. 작품을 줄곧 관통하는 주제도 여기에 있다.

영화 ‘순천’은 출연진 크레디트 끝자락에 순천만을 올려놓았다. 각양각색의 생명, 특히 인간을 품은 순천만은 이 작품에서 대사 하나 없지만 수천 마디를 들려주는 가장 소중한 출연자다. 인디플러그 제공
영화 ‘순천’은 출연진 크레디트 끝자락에 순천만을 올려놓았다. 각양각색의 생명, 특히 인간을 품은 순천만은 이 작품에서 대사 하나 없지만 수천 마디를 들려주는 가장 소중한 출연자다. 인디플러그 제공
○ 순천

전남 순천만엔 할머니 어부 윤우숙이 산다. 일흔이 넘도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억세게 일만 해온 그가 바라는 건 남편의 금주와 자식의 안녕뿐. 하지만 평생 밥벌이에 무심했던 남편은 갈수록 병약해지며 모든 걸 아내에게 의지한다. 할머니는 50년 뱃일에 전국구(온몸)가 아프다며 푸념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남편 뒷바라지에 지극정성인데….

현각 스님의 구도를 담은 다큐 ‘만행(卍行)―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997년)를 연출한 이홍기 감독의 ‘순천’은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난 작품이다. 지난해 한국PD대상 작품상과 한국독립PD상 대상을 받았다. 한국 다큐로는 처음으로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순천’은 공전의 히트작 ‘워낭소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워낭소리에서 최원균 옹이 소달구지를 몰던 모습은 윤 할머니가 조각배 노를 젓는 모습에서 스르륵 겹친다. 큰 욕심도 없이 순박하게 평생을 살아온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는, 땅을 파건 그물을 던지건 어느 풍광에 담아도 가슴이 먹먹하다.

뭣보다 영화는 순천(順天·하늘의 뜻을 따른다)이란 제목 그대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카메라는 적당한 거리에서 관여하지 않고, 차분히 절제하며 켜켜이 세월을 쌓는다. 그 속엔 비릿하게 꿀렁이는 활어(活魚)의 정취, 삶과 죽음이 뒤섞이는 생태의 울림이 깃들어 있다. 영화는 묻는다. 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누구라서 붙잡겠는가. 허나 그 터전이 없었다면 우린 존재나 했을까. 생명의 어머니 자연은 그 섭리를 살포시 속삭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다큐영화#60만 번의 트라이#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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