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아직 뜨거웠지만 낙산사는 여전했습니다. 초입의 홍예문과 해수관음상, 바람과 어우러지는 푸른 바다 모두 그대로였습니다.
2011년 이후 3년 만의 발길이었습니다. 그때는 낙산사 동종과 원통보전을 잿더미로 만든 2005년 화재 뒤 복원사업을 책임진 정념 스님과 시집 ‘밥값’에 실린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로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정호승 시인과 동행했죠.
당시 낙산사는 화재 뒤 6년이 흘렀지만 그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역력한 고목과 노송의 자리를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여린 나무, 세월의 이끼를 느낄 수 없는 새 전각…. 정념 스님은 “아무리 복원을 잘해도 죄인이라는 마음으로 산다”, 정 시인은 “이제 낙산사에서 두고 온 마음을 찾고 간다”고 했습니다. 시인의 그 마음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던 그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낙산사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를 두고 왔습니다. 그것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노파심입니다.
올 3월 해수관음상 인근 야산에서 불이 나 1시간여 만에 진화됐습니다. 정념 스님을 도와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낙산사 총무 무문 스님은 차담을 나누다 몇 달 전 화재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낙산사에 살면 작은 불씨 하나만 봐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다행하게도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어 우려할 만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에도 화재 진압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불티가 다시 큰 화재로 이어졌으니, 며칠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재의 기억은 낙산사 사람들을 더욱 철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뿐 아니라 바람길까지 공부하게 됐다는 정념 스님의 말처럼 이곳 사람들은 복원과 각종 불사(佛事) 때에도 불과 바람을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고려하게 됐습니다.
낙산사 화재는 불교계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이자 아픔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는 낙산사의 모습은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몇몇 스님과 종무원들의 몫이 아니라 사찰을 찾는 모든 이들이 지켜나가야 할 낙산사입니다.
가을, 낙산사를 찾으시죠. 그리고 ‘T’(몸과 마음) 속에 남아 있던 무언가를 찾거나 두고 오시면 어떨까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