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가을은 재즈를 닮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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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1일 일요일 맑음. 가을의 잡음. #124 Solveig Slettahjell ‘Wild Horses’ (2011년)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첫 내한무대를 연 노르웨이 재즈 가수 솔베이 슬레타옐. 이다영 제공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첫 내한무대를 연 노르웨이 재즈 가수 솔베이 슬레타옐. 이다영 제공
흰 건반이 도열한 듯 팽팽했던 여름이 물러가면 대기에 잡음의 계절이 진군해 들어온다. 스산해진 아침저녁 공기를 헤치고 머릿속에 끼어든 상념은 짝짓기를 기다리는 풀벌레처럼 울어대고 이 잡음은 마침내 이어폰에서 울리는 음악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당초 입주한 이명(耳鳴)의 집에 기분 좋게 살림을 푼다.

‘슈퍼스타K’와 야외 음악 축제의 쨍쨍함을 피해 숨어든 20일 밤 제2회 유러피안 재즈 페스티벌(19∼21일) 둘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노르웨이 재즈 가수 솔베이 슬레타옐(43)의 무대였다. 그 나라 재즈 트리오 ‘인 더 컨트리’의 리더 모르텐 크베닐의 피아노와 전자 음향만을 반주로 해 그가 부른 라디오헤드의 ‘데어 데어’, 애니 레녹스의 ‘더 새디스트 송 아이브 갓’이 인상적이었다. 뮤지컬을 주로 상연하는 광림아트센터 BBCH홀(서울 강남구 논현로 163길)의 조명과 분위기는 이런 공연과 잘 어울렸다.

크베닐은 라디오 수신과 음파 변형이 가능한 초소형 신시사이저 OP-1과 기타 이펙터를 이용해 내는 잡음을 그랜드 피아노 타건과 실시간으로 섞어내느라 바빴다. 열창하는 슬레타옐의 옆얼굴을 멜로 영화의 가장 슬픈 장면처럼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이내 정강이를 걷어차인 축구선수처럼 눈을 질끈 감고 잡음과 평균율을 동시에 연주하는 그의 표정이 재미났다. ‘데어 데어’, ‘와일드 호시스’(롤링 스톤스)의 노랫말 속 나뭇가지와 야생마는 추운 나라로 달려가고 싶은 듯 보였다.

전날(19일) 영국 피아니스트 존 테일러의 독주,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스테파노 바타글리아와 독일 베이스 클라리넷 주자 울리히 드레슬러의 훌륭한 듀오 연주는 모두 18일(현지 시간) 숙환으로 별세한 캐나다의 재즈·자유즉흥 트럼페터 케니 휠러에게 헌정됐다. 잡음과 불협화음으로 일상의 질서를 굴절시키려는 재즈의 음모는 가을과 닮아 있다. 언젠가 나도 잡소리만 잔뜩 남기고 겨울나라로 떠나겠지.

근데 한 달 전에 세상을 흔들었던 얼음물 샤워 붐은 어디 간 걸까. 너무 추워져서일까. 1명이 시작해도 17일 만에 4304만6721명으로 전파되는 거였는데. 난 비켜갔나. ‘×××, 아이스버킷챌린지 동참’으로 시작하는 e메일 보도자료는 왜 더이상 안 오나. 계절의 레코드는 돈다. 잡음과 함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재즈#제2회 유러피안 재즈 페스티벌#크베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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