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초자연’전 초대 在獨작가 김윤철씨
플라스크-비커로 가득찬 전시장… 흡사 과학실험실에 온듯
음악 유학 갔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훗날 엔지니어-발명가로 기억됐으면”
김윤철 씨의 작품 ‘flare(불꽃)’와 ‘effulge(빛나다)’(왼쪽부터). 직접 만든 질료 용액을 용기에 담아 전자기 장치로 움직임을 유도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는 “유럽 전시에는 유체역학이나 재료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종종 단체 관람을 온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미술은 시시각각 유동하는데 한국 미술계는 뻣뻣이 굳어 있는 느낌이다. 경직된 상명하복 분위기를 위에서 강압한다기보다 일부 젊은 구성원은 자진해서 따르더라.” 커피 두 잔을 앞에 놓고 대뜸 시작한, 전시 내용과 무관한 이야기로 훌쩍 20분이 흘렀다. 김윤철 씨(44)는 내년 1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초자연’전의 참여 작가다. 작가 5명이 개별 전시공간을 구성한 기획전. 플라스크와 비커로 가득한 과학실험실을 닮은 그의 방은 유독 도드라지는 무게중심이다. 얼핏 미술이 아닌 듯하면서 틀림없이 아름답다. 》
“관공서 행사 같은 언론간담회는 묘한 경험이었다. 미술관장의 건조한 축사 뒤에 담당 큐레이터가 ‘관장께서 저보다 잘 설명해주셨다’고 하니 어색했다. 자유로운 소통보다 수직적 전달이 많은 준비 과정도 쉽지 않았다.”
‘effulge’ 6개 프레임 중 하나를 가까이 들여다본 모습. 투명한 강화플라스틱 프레임 뒤의 전자기 장치들이 금속 유체에 움직이는 이미지를 그린다.김 씨가 솔직한 소감을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생활터전이 한국 밖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은 아직 그에게 ‘네가 무슨 미술 전시를 하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작곡을 공부한 김 씨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잠시 일하다가 15년 전 독일 유학을 떠났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전자음악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을 때였다. 음악을 배우러 간 학교 담당교수가 ‘한국에서 음악 공부했는데 왜 또 같은 걸 배우느냐’며 쾰른의 예술학교를 추천했다. 음악을 하나의 도구로 삼는 미디어아트로 전공을 바꿨다. 이제는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도 구닥다리 느낌이 강해졌다.”
―지금은 미술가인가 음악가인가.
“베를린에 작업실을 두고 오스트리아 빈을 오가며 대학 강의를 해 생계를 유지한다. 크고 작은 콘서트에 참여해 음악도 발표한다. 작업실은 공방, 실험실, 화실, 녹음실의 혼합체다. 요즘 전시하는 작업은 유학 중 몰두한 ‘질료(質料)’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작품의 재료는 작가의 미디어다. 그 재료의 근간, 제작 가능한 가장 작은 입자를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훗날 가능하다면 엔지니어나 발명가로 기억되고 싶다.”
설치작품 ‘cascade(폭포)’의 구상 스케치. 복잡한 기계장치 설계도와 그로테스크한 문양 패턴 그림을 뒤섞은 모습이다. 김윤철 씨 제공―전시된 투명 강화플라스틱 용기 안에서 유동하는 물질이 그 입자인가.
“산화철을 가공해 얻은 용액이다. 정확한 원료와 구체적인 제작 방법은 비밀이다. 4월에 고등과학원에서 작품 관련 강연을 했는데 재료공학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짐작하더라. 전자기 장치를 부착한 용기와 프레임에 이 질료를 담아 계획했던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 을지로 골목 곳곳의 전기, 유리, 금속, 플라스틱 기술자들이 작업 파트너가 돼 줬다. 함께 일하면서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를 여러 번 떠올렸다. 전시에 와주길 기다리고 있다.”
―천체물리학자 제이미 포레로로메로, 미술사학자 루치아 아얄라 박사와 결성한 예술과학 프로젝트 그룹 ‘플루이드 스카이스’는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나.
“2011년 베를린 전시를 본 포레로로메로 박사가 연구소로 나를 데려갔다. 태양 표면 유동물질을 시뮬레이션으로 연구하는 그곳 사람들은 컴퓨터 모니터 속 이미지와 똑같은 실물을 만든 ‘예술가’를 몹시 흥미로워했다. 그렇게 인연을 시작해 2012년 아얄라 박사를 포함한 공동 기획전을 열었다. 그 뒤 셋이 자주 만나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눈다. 거창한 장르 융합을 고민하는 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을 각자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행복한 교류인 건 분명하다.” 02-370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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