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요리는 대개 모 아니면 도다. 순서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음식을 내면서 전체 흐름의 완급을 조율하는 건 쉽지 않다. ‘이걸 굳이 왜 코스로 주는 거야.’ 여차하면 불만과 허기에 지친 원성이나 듣기 십상이다.
20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는 ‘도’ 코스요리의 기억을 되새기게 했다. 뭔가 차린 게 많다. 30개 나라 16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런데 부지런히 발품 팔아 구석구석 둘러봐도 허기가 가시질 않는다. 서울 삼청동길을 오르내리며 이 갤러리 저 갤러리를 오후 내내 기웃기웃한 느낌이다.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는 전시 공간 어디에도 착 감기지 못한 채 기름띠처럼 둥둥 허공을 떠돈다.
재료가 부족한 건 아니다. 갑작스레 주방장이 바뀌면서 허둥지둥 접시를 채운 기색이 역력하다. 본전시가 꾸며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실 2층. 중국 작가 수이젠궈의 청동 조각 뒤로 제작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어째서인지 스크린 주변 조명을 조절하지 않은 탓에 기껏 준비한 영상을 제대로 관람하기 어렵다.
코스요리는 맛의 강도에 따라 내놓는 타이밍을 조절해야 한다. 미술 작품도 물리적 크기와 주제의 규모에 걸맞은 저마다의 주변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본전시의 작품 배치는 중학교 체육시간 양팔 벌려 좌우로 정렬을 닮았다. 빽빽하게 들어찬 작품들이 ‘야 거기 좀 비켜 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개막 전부터 잡음이 적잖았다. 전시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논란으로 운영위원장이 사퇴했다. 부산지역 미술인들은 프랑스 출신 올리비에 케플랭 감독의 작품 선정에 대해 ‘프랑스 비엔날레를 만들려 한다’고 비판하며 참여를 거부했다.
부산문화회관의 특별전은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조급함을 보여준다. 유명 작가들의 옛 작품을 죽 늘어놓는 데 그쳤다. 고려제강 수영공장에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의 젊은 기획자들이 함께 꾸린 특별전 ‘아시아 큐레이토리얼’전은 아쉬운 해답이다. 굳이 비엔날레를 찾아온 관객이 기대하는 건 잘 아는 작가의 비싼 작품이 아니다. 앞으로 미술계가 맞이할 흐름은 뭘까. 맞든 틀리든 그에 대해 용감하게 들이민, 어떤 새로운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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