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 영혼에 걸어 들어왔어/조금씩 빼앗고 훔쳤지/다른 이가 (당신 영혼을) 장악할 때까지.’(‘더 트러블스’ 중) 아일랜드 록 밴드 U2는 신작에서 사라진 순수에 비가(悲歌)를 바친다. 왼쪽부터 보노, 애덤 클레이턴, 래리 멀린 주니어, 디 에지.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1976년 9월, 아일랜드 더블린의 마운트 템플 중학교. 게시판에 ‘록 밴드 멤버 구함’이란 공지가 붙었다. 모집자는 래리 멀린 주니어란 열다섯 살짜리 드러머였다. 당시 유행하던 펑크 록에 빠져 있던 10대 풋내기 뮤지션 폴 휴슨(보노), 데이비드 에번스(디 에지), 애덤 클레이턴이 음악으로 세상을 흔들어 보자며 뭉쳤다.
이들은 38년 뒤인 2014년 9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과 함께 자신들이 만든 앨범을 5억 명의 아이튠스 스토어 이용자에게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전 세계에 1억5000만 장의 앨범을 팔았고 22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가져갔고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2005년)된 현존하는 가장 성공한 밴드의 하나, 바로 U2다.
U2의 음악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1996년)의 주제곡도 연주한 멀린 주니어(드럼)와 클레이턴(베이스기타) 듀오가 만드는 박진감 넘치는 리듬에, 지중해를 바라보며 얼굴에 바르는 애프터셰이브 같은 보노(보컬)의 목소리, 단순한 악절을 리드미컬하게 퉁기면서 메아리 효과를 활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디 에지의 전기기타가 얹히면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는 U2만의 사운드가 나온다. 감미로우면서도 대찬 기상이 느껴지는 멜로디는 맥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도, 스타디움 콘서트의 레퍼토리로도 어울린다.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 ‘웨어 더 스트리츠 해브 노 네임’ ‘뷰티풀 데이’ ‘원’ 같은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건 U2뿐이다. 명곡 릴레이와 첨단 멀티미디어 구조물을 앞세운 초대형 공연은 음악 팬들 사이에 ‘죽기 전에 봐야 할 콘서트’로 자리매김했다.
U2가 이달 9일 무료로 공개한 13집 ‘송스 오브 이노센스’는 5년 만의 신작이다. ‘순수의 노래들’이란 제목처럼 11곡의 노랫말은 티 없던 어린 시절의 열정과 환멸, 회귀 욕망에 천착한다. 첫 곡 ‘더 미러클(오브 조이 라몬)’과 마지막 곡 ‘더 트러블스’가 주제 선율을 각각 성인과 아이들의 제창으로 표현한 것이 전체를 아우르는 큰 대칭을 이룬다. 멤버들이 음악에 투신하게 해준 우상인 밴드 라몬스, 더 클래시에 공공연히 경의를 표한다.
전문가들은 애플 독점 무료 공개라는 충격적인 발표 방식과 달리 신작에 담긴 음악은 특기할 것 없이 무난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변신이랄 건 없지만 38년의 내공과 특유의 진지한 메시지만큼은 변함없다”고 했다. 김윤하 평론가는 “근작들과 비교해도 준수한 결과물이며 베테랑 밴드로서 욕먹을 수준의 앨범은 아니다”라면서도 “과연 모범생답다고 할까. 재미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작가 평론가도 “발표 방식은 새롭지만 음악은 글쎄”라고 했다. 록 전문 월간지 ‘파라노이드’의 송명하 편집장은 “팬들은 더이상 U2의 음악에서 변화나 혁신을 바라지 않는다”며 “신작에 어떤 음악이 담겼어도 배포 방식만 한 충격이 되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애플 아이튠스 스토어 이용자만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을 통해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송스 오브 이노센스’는 10월 13일 CD와 LP레코드, 유료 디지털 음원 형태로 세계 동시 발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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