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이단적’ 작품…반응 극과극 작품 곳곳 숨겨진 상징 찾는 재미 쏠쏠 락 밴드 속 바이올린? 인물 내면 묘사
명작인가 괴작인가.
뮤지컬 ‘더 데빌(The Devil)’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3인극 락 뮤지컬을 표방한 작품. 연출가 이지나씨의 재해석은 “한 번 보고 홀딱 반했다”와 “열 번을 봐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절반씩 얻고 있다. 꽃다발과 돌다발이 동시에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 뉴욕증권가로 옮겨놓은 ‘더 데빌’은 온갖 상징적인 장치와 오페라의 냄새마저 풍기는 락 음악이 주축이다. 상당히 난해하다. 블랙먼데이로 한 순간에 밑바닥으로 떨어진 증권맨 존 파우스트(송용진 분), 그에게 ‘힘’을 주는 대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변질시키지 않는 심장의 빛깔’을 내어달라는 계약을 제시하는 X(한지상 분), 악으로 변해가는 존을 악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레첸(차지연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더 데빌’에는 성서의 상징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데빌’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꼭 장점이랄 수는 없지만)있을 것이다.
성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존 파우스트와 그레첸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하와)다. 악마(X)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맛보지 않겠느냐”며 이브(그레첸)에게 접근하는 대신 아담(존 파우스트)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창세기를 둘러싼 이단의 설에 대한 혐의(?)도 읽힌다. 악마가 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레첸을 능욕하는 설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레첸은 X의 씨앗을 잉태하고, 존은 정신분열을 일으킨 그레첸을 버린다. “악마와의 계약은 당신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할 것”이라며 울부짖는 그레첸에게 존은 “내게는 네가 지옥이야”라며 맞받아친다.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존은 (예상대로) 계약의 파기를 요구하지만, 그 결과는 피할 수 없는 파멸이다.
● 도처에 감추어진 상징과의 보물찾기…요즘 보기 드문 ‘이단적인’ 작품
도처에 숨겨진 상징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워낙 절묘하게 감춰 찾아도 찾아도 보물 쪽지는 끝없이 나온다. 락 뮤지컬답게 무대 왼쪽에는 밴드가 배치되어 있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전형적인 락 밴드 편성 외에 바이올린이 눈길을 끈다.
등장인물들의 옷에도 관심을 둘 것. 세 사람은 화이트, 블랙, 이도 저도 아닌 중간색의 옷을 장면에 따라 갈아입는다. 바이올린의 불안한 선율이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다면, 옷의 컬러는 정체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속옷과 같은 흰 옷을 입고 있던 그레첸은 X에게 능욕을 당하고 악의 씨앗을 잉태하게 되면서 검은 옷을 입는다.
부풀린 가발과 치렁치렁한 드레스, 샹들리에와 무도회가 등장하는 유럽풍 뮤지컬이 득세하고 있는 요즘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 ‘더 데빌’은 확실히 ‘이단’적인 작품이다. 앙상한 철골구조물과 계단만으로 꾸민 무대, 레이저쇼를 방불케 하는(과한 느낌이 들 정도로) 조명, 귀청을 찢는 음악과 배우들의 끊임없는 절규는 확실히 요즘 트렌드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
마지막 장면. 행복해 하는 존과 그레첸의 모습을 한없이 따뜻한 미소를 띤 X가 바라보고 있다. ‘악’대신 ‘선’을 선택한(했다면) 이들 커플의 모습일 수도 있고,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의 회상 장면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결론은 하나다. 악마는 이렇게 늘 인간을 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선택’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