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최인호 작가의 1주기(25일)를 앞두고 1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추모전 ‘최인호의 눈물’이 열렸다. 개막 행사에는 고인의 아내 황정숙 씨와 딸 다혜 씨, ‘딸의 딸’ 성정원 양(14·사진)이 참석했다. 고인이 숨지기 직전까지 챙겼던 에세이 ‘나의 딸의 딸’(여백)도 이날 첫선을 보였다. 정원 양은 할아버지가 암 투병 중 기도하며 흘린 눈물 자국이 허옇게 번져 있는 책상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 책상 위에는 정원 양이 선물한 웃는 그림이 그려진 조약돌과 눈사람 인형이 놓여 있었다. 정원 양은 할아버지를 그리며 쓴 편지를 동아일보에 보내왔다. 》
▼다시 한번… 학교 빼먹고 백화점에 함께 놀러가고 싶어요▼
보고 싶은 할아버지,
요즘 나는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게 자꾸 꺼려져요. 할아버지 집이 싫어서가 아니에요.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한 행복한 기억들이 몰려 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에요.
할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길에서 하얀 조약돌을 몇 개 주워 오셨던 거 기억나죠? 그때 내가 돌 위에다 웃는 표정을 그려 드렸죠.
할아버지가 그 조약돌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행복해하셨다는 걸 얼마 전 엄마한테 듣고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됐네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그저
멍한 기분이었어요. 근데 조금 있다가 갑자기 내 손이 떨리고 있는 걸 알았죠. 난 어찌할 바를 몰라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울었어요. 그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나갔어요. 일 년…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후, 모든 게 변하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어요. 특히 돌아가시던 마지막 해에는 너무 아프셔서
할아버지가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할아버지가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가시던 그날, 숙모는 금세 나아서
돌아오실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을 믿고 싶었고 정말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그날 이후 다신 할아버지를 볼 수 없었지요.
며칠 전, 할아버지가 저에 대해 쓰신 ‘나의 딸의 딸’ 책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많은 기억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시기 전에 재밌게 지냈던 행복했던 우리만의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지금도 할아버지가 저를 유아원에 데려다 주시던 날이 떠올라요. 가기 싫다고 울면서 떼를 쓰자 할아버지는 유아원을 빼먹고 백화점에
데려가 포도주스를 사주셨죠. 그때처럼 학교를 빼먹고 함께 놀러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한 번만,
마지막 한 번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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