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의 뫔길]‘정구사’를 바라보는 가톨릭 사제들의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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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과 정구사.

한국 가톨릭에는 다른 약칭으로 불리는 한 단체가 있습니다. 22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창립 40주년 감사미사를 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입니다.

이 단체는 오랜 관행에 따라 흔히 사제단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 명칭에 대한 가톨릭 내부의 거부반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 단체는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 크게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 보호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뒤에도 계속된 법과 제도의 틀을 벗어난 주장과 행동, 북한 인권에 대한 외면 등은 침묵하는 다수의 반(反)사제단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이 단체는 가톨릭의 공식 기구가 아닌 임의단체다. 사제단이라고 하면 가톨릭 사제 전체를 대표하는 것 같다”며 정구사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 대한 가톨릭 분위기를 취재하다 보면 공통된 요청을 받게 됩니다. 인터뷰에 응한 신부들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뒤 “정구사 알지 않느냐. 내 이름 나가면 여러 명이 행패 부리고 인터넷에 비난하는 탓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꼭 익명으로 해 달라”는 것이죠.

이날 이 단체의 전 대표인 전종훈 신부는 미사강론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돼야 하는 게 시대적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전 신부는 또 “세월호 유족에게 양보하라는 추기경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교황과 뜻을 같이해야 할 교구장의 이런 발언은 사제의 첫 마음인 십자가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을 비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전 신부는 염 추기경의 ‘아들 신부’입니다. 교계에서는 신학대에 진학할 때 추천서를 써주거나 서품식 때 사제의 직책과 의무를 상징하는 영대(領帶)를 주는 신부를 ‘아버지 신부’라고 부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이 무엇이냐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아들 신부가 아버지 신부를 공개석상에서 부끄럽다고 해야 했을까요? 더구나 염 추기경의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40주년 미사를 진행하면서 말이죠.

교계에서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강우일 주교가 이 단체에 보낸 축사는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비판을 두려워할 것은 아니지만 참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생각이 다른 이들도 배척하지 않는 아량과 관용도 필요하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가톨릭#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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