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를 반 템포 늦춰줬던 존재라고 할까요.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가도 그를 보면 마음 한구석에 여유가 생겼어요.”
‘화첩기행’으로 유명한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61)가 신작 에세이 ‘자스민, 어디로 가니’(열림원)를 펴냈다. 주인공은 김 교수 가족과 16년간 함께하다 떠난 개 자스민. 영국 포메라니안종인 조그만 개 이야기는 김 교수의 명성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그래서 자스민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든 후에도 한참 고민했다고 한다. 반려견을 놓고 남우세스럽게 호들갑 떠는 건 아닌지. 하지만 16년간의 기록은 자스민을 매개로 한 가족의 기록이고 자스민을 통해 삶과 사랑, 죽음의 ‘볼록판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전개된다. 김 교수의 자스민 이야기와 자스민의 시각에서 본 가족 이야기가 교차된다. 김 교수는 직접 책에 들어갈 그림 10여 점도 백묘법(먹으로 선만 그리는 화법·사진)으로 그렸다.
“제 가족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아줍니다. 안아보면 자스민의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리고 있었어요. 생명체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랄까요.”
김 교수의 기분이 좀 처져 있다 싶으면 슬그머니 그의 곁에 붙어 있었다. 산에 갈까 마음먹고 등산복을 입기 위해 안방으로 걸어가면 벌써 현관 앞으로 후다닥 뛰어가 앉아 있었다. 나도 데려가 달라는 듯.
자스민의 마지막은 어느 생명체에게나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웠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는데도 군대 간 둘째 아들 방으로 기어가기 위해 혼신을 다하기도 했다.
“자스민이 사라지고 나서 생명의 존재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글쓰기는 제 해원(解寃) 같은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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