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32개국 정복… ‘전쟁의 神’이라 불린 사나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7일 03시 00분


◇칭기즈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리처드 A 가브리엘 지음·박리라 옮김/255쪽·1만5000원·글항아리
‘칭기즈칸 오른팔’ 수부타이 일대기

중국 문헌에 전해 내려오는 수부타이 초상. 몽골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수부타이는 무예에 능한 군인은 아니었지만 비상한 두뇌를 가진 천재 전략가였다. 글항아리 제공
중국 문헌에 전해 내려오는 수부타이 초상. 몽골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수부타이는 무예에 능한 군인은 아니었지만 비상한 두뇌를 가진 천재 전략가였다. 글항아리 제공
이 책은 칭기즈칸에 가려 역사 속에 묻힌 용장(勇將) 수부타이(1176∼1248년)를 끄집어내 재조명했다. 그의 성장 환경과 유년 시절뿐만 아니라 수부타이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몽골의 군사시스템까지 폭넓게 다뤘다. 군사전략가인 저자답게 수부타이의 전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도 인상적이다.

흥미롭게도 수부타이는 우리 역사와도 깊이 얽혀 있다. 그는 1216년 압록강을 건너 서경(지금의 평양) 근처까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만주에서 도망친 금나라의 패잔병을 추격하다 고려 안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로부터 43년 뒤 고려는 몽골의 침입에 무릎을 꿇고 만다. 칭기즈칸 사후 고려를 굴복시킨 주역인 셈이다.

수부타이는 몽골군 최고사령관으로서 거의 전권을 갖고 남송과 서하,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아르메니아 등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 내 32개국을 잇달아 정복하는 전공(戰功)을 세웠다. 저자는 “칭기즈칸이 죽은 뒤에도 놀라운 세계 정복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건 수부타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쓰디쓴 패배를 맛봤던 당대 중국인들도 수부타이를 ‘신의와 불변의 장수’라고 칭하며 존경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의 성장 과정은 정통 몽골 전사와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초원에서 태어나 세 살 때부터 말을 타는 칭기즈칸 부족과 달리 삼림지대의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난 수부타이는 열네 살에 입대할 때까지 말을 타본 적조차 없었다. 당연히 몽골족의 트레이드마크인 활쏘기도 서툴렀다. 그런 그가 군 사령관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칭기즈칸의 혜안 덕분이었다. 칭기즈칸은 부족 인종 출신과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사람을 쓸 줄 알았다. 중원 공략에 앞서 몽골 부족들을 통일한 계기가 됐던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칭기즈칸은 주요 지휘관에 자신의 부족 출신을 단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다. 오직 실력과 경험을 중심에 놓고 인재를 폭넓게 등용했다.

수부타이는 외부 문화나 기술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이것이 군사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키는 데 바탕이 됐다. 그 대표적인 예를 몽골의 금나라 정벌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변변한 성을 쌓아본 적이 없었던 몽골은 견고한 금나라 성채를 공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공성(攻城) 작전의 기초는 물론이고 투석기와 같은 공성 병기조차 제대로 쓸 줄 몰랐다. 그러나 수년간 전투를 거치며 금나라 기술자들을 과감히 군대로 편입하자 전세는 역전됐다.

칭기즈칸의 기병대를 재현한 몽골인 부대. 이틀 만에 200km를 이동할 수 있었던 몽골 기병대는 서양인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동아일보DB
칭기즈칸의 기병대를 재현한 몽골인 부대. 이틀 만에 200km를 이동할 수 있었던 몽골 기병대는 서양인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동아일보DB
힘에만 의존하지 않고 광범한 정보 수집을 통해 적절한 외교력을 구사한 것도 한몫했다. 수부타이는 각 지역의 세력 판도와 그들 간의 관계를 면밀히 살폈다. 예컨대 1234년 금나라 수도 개봉(開封)을 두 갈래로 에워싸 협공할 수 있었던 건 몽골군 일부를 남송의 영토를 거쳐 우회 배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송은 몽골에 군대를 지원할 정도로 금나라와 관계가 틀어져 있었다.

수부타이의 탁월한 군사전략은 700여 년이 흐른 러시아(당시 소련)에서 화려하게 꽃피운다. 300년간 몽골에 지배당한 러시아에선 수부타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투하쳅스키 소비에트 붉은 군대의 사령관 등 소련 군부는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탱크를 통한 기습전으로 적을 교란하는 ‘종심전투(縱深戰鬪)’ 전술을 활용해 나치 독일에 대한 반격의 기틀을 마련했다. 소련 군부가 수부타이의 전술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실전에 적용한 것이다. 오랫동안 잊혀진 수부타이가 세계 전사에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칭기즈칸#수부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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