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앞세운 ‘소격동 상륙작전’… 신비 벗고 대세 활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일 03시 00분


서태지 5년만의 9집 ‘콰이어트 나이트’… 달라진 컴백 전략

《 ‘서태지’(본명 정현철·42)란 이름엔 받침이 없다. 본명 ‘정현철’엔 음절마다 받침이 있다.
예명부터 의미의 명확성보다는 어감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 무게를 둔 서태지의 음악은 가사와 음향 양면에서 의미보다는 그것을 구성하는 이미지를 건축하는 데 골몰해왔다.
서태지가 대중에 자신을 알리는 홍보, 마케팅 방식에서도 특출한 이미지는 앞서왔다.
2009년 8집 ‘아토모스’ 때 가짜 UFO를 만들어 촬영해 흥미를 유발시킨다거나 강원도 산골의 폐가에서 소음을 녹음하며 미스터리를 만든 방식은 ‘서태지답다’는 평을 얻었다.
이번엔 다르다. 20일 5년 만의 정규앨범인 9집 ‘콰이어트 나이트’를 내는 서태지는 인기 가수 아이유를 먼저 내세웠다. 앨범 수록곡 중 ‘소격동’을 아이유에게 부르게 해 2일 0시 주요 음원 서비스 사이트에 공개했다. 서태지의 컴백 작전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봤다. 》      
        

○ 왜 서태지 아닌 아이유인가

2일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을 공개하며 5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서태지의 8집 활동 당시 모습. 그는 “아이유를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후배 여자 가수로 주목해 왔다. 기대 이상으로 노래의 매력을 빛내줘 기쁘다”고 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2일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을 공개하며 5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서태지의 8집 활동 당시 모습. 그는 “아이유를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후배 여자 가수로 주목해 왔다. 기대 이상으로 노래의 매력을 빛내줘 기쁘다”고 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아이유는 ‘소격동’에서 본인의 절창을 아끼고 서태지스럽게 사각댄다. 로엔트리 제공
아이유는 ‘소격동’에서 본인의 절창을 아끼고 서태지스럽게 사각댄다. 로엔트리 제공
이날 발표한 ‘소격동’은 가수명에 아이유만 명기했다. ‘서태지(feat. 아이유)’도, 그 반대도 아니다. 김홍탁 제일기획 마스터는 “아이돌 파워가 점령한 가요계에서 서태지 단독으로는 흥미 유발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아이유라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입소문 효과를 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아이유는 여성인 데다 팬층이 넓고 로맨스 분위기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영리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삼촌 팬’을 통해 아이유는 서태지와 팬덤을 일부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서태지는 서태지컴퍼니를 통해 “‘소격동’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여자 가수로 아이유를 바로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전작에서 신비로운 지역인 칠레 이스터 섬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거나, 신세경 이은성(현 부인) 같은 묘한 분위기의 신인 여배우를 이미지 뮤즈로 내세운 것과 달리 처음으로 대리 가창자를 내세웠다는 점은 신선하다. 김민석 서태지컴퍼니 대표는 “아이유의 보컬 디렉션(지도)을 서태지 씨가 스튜디오에서 직접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작전은 순항 중이다. ‘소격동’은 2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음원 서비스 사이트에서도 실시간 차트 정상을 지켰다.

○ 짧은 홍보 기간… 시대상 반영해

서태지는 전작인 8집 발표에 1년을 썼다. 2008년 7월 ‘모아이’를 먼저 발표한 뒤 3∼6개월 간격으로 ‘버뮤다’ ‘시크릿’을 냈고 이듬해 7월에야 정규앨범 전체를 공개했다. 이번엔 9월 말부터 10월 20일까지 3∼4주에 총공세를 펼친다. 5년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서태지의 9집 홍보 업무를 대행하는 포츈엔터테인먼트는 가요 홍보 전문 대행사다. 지난해 조용필의 ‘헬로’ 신드롬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온라인 홍보에 강점을 갖고 있다. 요즘 트렌드를 가장 잘 아는 회사란 뜻이다. 이진영 포츈엔터테인먼트 대표는 “SNS와 매체의 수가 많아진 요즘은 대개 발매 전 2주를 총공세 기간으로 잡는다. 서태지 씨는 당초 호흡을 좀 더 길게 가져가길 원했지만 여러 여건상 3∼4주에 활동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슈와 가요 차트 회전주기가 극단적으로 짧아진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태지는 10일 직접 부른 ‘소격동’ 음원을 발표하고 9일 밤 방송 출연을 한다. 18일 콘서트에서 9집 전곡을 연주하고 20일 앨범을 발매한다. 숨 가쁜 일정이다. 콘서트 입장권은 3만 석 중 6000여 석이 덜 팔린 상태다.

     
     
▼ 음악적 신선함 없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은 여전 ▼
아이유 입 빌린 ‘소격동’ 들어보니


2일 아이유의 입을 빌려 공개된 ‘소격동’은 일렉트로닉 팝 장르의 노래다.

아이유는 바이브레이션(떨기 창법)이나 고음을 동반한 절창 대신 예쁘장한 목소리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성별을 바꾼 서태지 같다. 서태지 특유의 동요처럼 쉬운 멜로디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가사가 21세기 전자 사운드와 만난 모양새다.

‘모아이’ ‘휴먼 드림’ ‘틱탁’을 비롯한 8집 수록 곡들에서 전자음을 결합하면서도 드럼, 베이스기타, 전기기타 소리의 알갱이가 탱글탱글 살아있는 편곡을 들려줬던 서태지가 ‘소격동’에서는 인공적인 전자음만을 층층이 쌓아 소리 풍경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의 평은 유보적이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요즘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관점에서 봤을 때 딱히 신선하거나 획기적인 도입은 없다”면서 “1990년대 활동한 싱어송라이터들이 복고와 편안함을 강조하는 데 비해 서태지가 여전히 새로운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은 눈에 띈다”고 했다.

김작가 평론가는 “아이유를 기용한 음악적 이유가 명쾌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서태지는 좋은 멜로디를 만드는 능력도 특출했는데 ‘소격동’에선 그 장기조차 유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누리꾼 사이에선 영국 전자음악 그룹 ‘처치스(Chvrches)’의 노래와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대화 평론가는 “이런 사운드와 편곡은 전자음악계에서는 이미 널리 쓰인 지 오래”라면서 “문제 삼기 힘들다”고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처치스가 동반 화제로 떠올랐다.

일주일 뒤 나올 서태지 버전 ‘소격동’은 어떻게 다를까. 김민석 서태지컴퍼니 대표는 “아이유 버전과 가사, 멜로디가 같고 편곡에서도 큰 차이가 없지만 보컬 음색 때문에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김윤하 평론가는 “서태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계 신경향을 가지고 장난감 조립하듯 음악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면서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앨범 전체가 공개돼야 온전한 평가가 가능할 듯하다”고 했다. 음악 작업이 완료된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는 CD 제조 공정만 기다리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소격동#서태지#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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