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아우슈비츠 수용소 ‘블랙코미디 버전’… 나치만행 그렸지만 獨-佛서 출판 거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4일 03시 00분


英작가 마틴 에이미스의 新作 ‘관심 구역’

영국 더타임스가 ‘1945년 이후의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고, 두 번이나 영예로운 ‘맨 부커상’의 후보로 이름을 올린 영국 작가 마틴 에이미스가 최근 신작 ‘관심 구역(The Zone of Interest)’으로 다시 한 번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의 나치의 만행을 영국인 특유의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책의 화자는 세 명이다. 주요 주인공인 안겔루스 톰센은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제1비서인 삼촌을 둔 덕에 젊은 나이에 소령으로 승승장구한다. 아우슈비츠에서 그의 주요 임무는 화학회사인 파벤사와 함께 유대인 수용자들을 이용해 합성 고무를 만드는 실험을 하는 것이다. 젊고 잘생긴 톰센은 아우슈비츠에 부임한 파울 돌 장군의 부인 하나를 연모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적 욕망만 있었지만 곧 진지한 짝사랑으로 이어지고, 하나를 도와 그녀의 옛사랑의 행적을 파헤치던 그는 어느덧 나치즘의 모순을 알아차린다.

두 번째 화자는 돌 장군. 겉으로는 당당한 장군인 척하지만 실은 젊은 아내 하나가 톰센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하면 주변에 소문나지 않게 유대인 시체들을 태울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다. 그는 술과 약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는 한편으로 죽은 전 동료의 아내였던 알리스와 불륜을 저질러 임신시킨다.

마지막 화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으로 묘사된 유대인 슈물. 그는 동료 유대인 가운데 가스실로 들어갈 사람을 고르고 사후 그들의 몸에서 금니와 귀중품을 꺼내는 감독관이다. 나치는 유대인 감독관도 주기적으로 독가스실로 보낸다. 감독관들은 생명을 고작 두세 달 늘리기 위해 같은 동포에게 잔혹한 행위를 한다.

이렇듯 세 주인공의 ‘관심 구역’은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점점 다른 방향으로 변해간다. 톰센은 결국 나치즘의 모순과 폐해를 깨닫고 히틀러를 향한 쿠데타에 참여한다.

하지만 에이미스의 전작 다섯 작품을 출간했던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 출판사 한저사는 ‘주인공 안겔루스 톰센이 나치즘을 미화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출간을 거절했다.

프랑스에서 에이미스의 작품을 출판해온 갈리마르사도 비슷한 이유로 출간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과 프랑스 출판사의 거절은 ‘아우슈비츠를 영국 특유의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묘사한 글’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다. 작가 에이미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사회에는 아우슈비츠에 대한 자료들이 넘쳐나고, 이 문제에 대한 독일인들의 인식은 이미 성숙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처럼 모두의 공분을 사는 문제라도 영국과 대륙 국가의 미묘한 감정 차이는 여전히 극복하기 쉽지 않은 듯하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관심 구역#아우슈비츠#나치#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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