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덕도 있지만 1970∼90년대 가수들 노래가 음원 차트 최상위권을 잠식한 주말이다. 세상에 원래 많았던 좋은 노래가 아이돌 그룹 인기에 묻혀 있었던 건지, 그동안 10대 아이돌 팬을 뺀 나머지 사람들이 죄다 음악을 별로 안 들었던 건지, 아니면 남녀노소를 전부 사로잡을 노래가 그동안 없었던 건지….
어쨌든 1990년대 가요는 요즘 향수의 대상이다. ‘그땐 그래도 들을 만한 노래가 많았다’고들 하는데…. 90년대에도 “요즘은 애들이 떼로 나와 춤이나 추지, 들을 만한 노래는 70, 80년대에 많았다”는 어른들 말은 들렸던 것 같다. 2010년대에도 좋은 노래는 매일 태어난다. 자본으로 뒤덮인 고봉의 크레바스 틈에서 빛 대신 그림자를 쬐고 있을 뿐.
어제는 경기 가평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 갔다. 독일의 노장 피아니스트 요아힘 쿤(70)의 혼신을 다한 독주를 화장실과 편의점 온수기 앞 긴 줄에서 들은 건 미안했다. 미국 색소포니스트 머시오 파커(71)의 신명나는 무대에도 집중하지 못해 미안했다. 내년엔 꼭 일찌감치 무대 바로 앞에 돗자리를 깔아야지.
서울로 향하다 가평읍사무소 앞에 차려진 야외무대에 멈췄다. ‘걸스 인 에어포츠’는 같이 본 J 형의 바람과는 달리 스튜어디스 콘셉트의 걸그룹이 아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날아온 이 건장한 다섯 남성(!)은 현대음악이나 후기 라디오헤드가 드리운 음악적 잔영을 두 대의 관악기(색소폰+색소폰 또는 클라리넷)와 드럼, 퍼커션, 신시사이저의 편성으로 50분간 풀어냈다. 이 연주곡들이 담긴 걸스 인 에어포츠의 최근 앨범 ‘카이코라’는 공교롭게도 올 1월, 내가 뉴질랜드 여행 때 해안열차에서 바다표범 무리를 봤던 지역 이름이었다. 이 남자들 덕에 한동안 멍해졌다.
두고 온 동네가 있다. 사랑에 빠졌던 어떤 노래가 살고 있는 동네 말이다. 가끔은 그 동네에 가서 자고 있는 노래를 깨워 새삼 다 큰 내가 밥을 먹이고 함께 산책하고 싶다. 어쩜 잠든 건 노래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그 노랜 지금도 어디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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