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을 ‘기막힌 행운아’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시각장애로 빛을 잃었지만 무대에 서는 꿈을 이뤘기 때문이란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원들의 이야기다.
이 예술단은 조선시대 재능이 뛰어난 시각장애인에게 궁중 잔치 등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했던 ‘관현맹인제도’를 본떠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것으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2일 서울 관악구 복지관 연습실에는 가야금, 대금 등의 반주에 맞춰 소리꾼 이현아 씨(26)의 청아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정가(正歌·전통 가곡과 시조를 노래로 부르는 것)를 전공한 이 씨는 지난해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예술단 단원 7명은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췄지만 오랜 기간 꿈을 접어야 했다. 거문고를 전공한 김수희 씨(43)는 악보를 보지 못해 일반 예술단 오디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 단원을 지낸 타악기 연주자 이진용 씨(42)와 정철 씨(41)도 10년간 무대에 서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점자 악보 교정 일 등을 했다. 정 씨는 “사물놀이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만 맴돌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창단 이후 이들은 국내외에서 연간 100여 회나 되는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5월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 깃든 이들의 연주는 진지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단의 변종혁 예술감독은 “자만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내는 단원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손잡고 예술나무포털(www.artistree.or.kr)을 통해 11월 15일까지 기획 모금을 벌이고 있다. 소록도를 포함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 나눔 공연을 열기 위해서다. 대금 연주자 문종석 씨(23)는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며 “공연을 즐기기 어려운 분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출중한 실력을 가졌지만 장애로 인해 무대에 설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이들에게 기회의 문이 좀 더 넓어지길 기원하며 연습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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