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갈구한다. 현 시점에서 세계 예술의 새로운 경향을 찾는 시선은, 필연적으로 아시아를 향할 수밖에 없다.”
14일 영국 런던 리젠트파크에서 ‘프리즈 아트페어’ 프리뷰가 시작됐다. 행사장에서 만난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컬렉터 울리 지그 씨는 15회째를 맞은 올해 프리즈 페어의 키워드로 망설임 없이 ‘아시아’를 꼽았다.
현대미술전문지 프리즈가 창설한 이 미술시장은 아직 스위스 바젤, 미국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 프랑스 피악(FIAC), 독일 쾰른과 베를린 등 세계 6대 아트페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유수 갤러리와 컬렉터들은 글로벌 미술계 흐름을 한발 앞서 읽게 하는 활용도에서 프리즈 페어가 단연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명문화랑 ‘하우저 앤드 워스’의 마크 파요트 부사장은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직전인 예비 스타나 재조명받기 시작한 옛 작가들을 각 갤러리가 작심하고 선보인다”고 말했다. 하우저 앤드 워스가 이번에 소개한 스위스 작가 진 팅글리(1925∼1991)의 설치작품은 이날 10억∼50억 원대에 거래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는 최신 현대미술 중심의 본행사에 25개 나라 162개 갤러리, 20세기 모던아트를 주로 조명하는 ‘마스터스’전에 127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본행사를 뜨겁게 달구는 중심에는 데이미언 허스트, 알렉산더 칼더, 프랜시스 베이컨 등 스타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페어는 15∼18일 열리지만 전 세계 컬렉터와 미술관 프로그래머들이 대거 찾아오는 프리뷰 날에 주요 작품의 거래는 대부분 완료된다. 허스트를 발굴해 영향력을 높인 영국 화이트 큐브 갤러리 부스에서는 그의 1993년작 ‘Because I Can’t Have You I Want You(가질 수 없기에 당신을 원해)’가 개막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400만 파운드(약 68억 원)에 팔렸다.
맷 캐리윌리엄스 화이트 큐브 세일즈 디렉터는 “지난해보다 확연히 높아진 가격대에서 더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갤러리가 제시하는 작품가가 전반적으로 올라갔는데도 구매자들은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스테디셀러의 열띤 거래만큼 큰 관심을 끄는 것은 아시아권 작가와 컬렉터다. 울리 지그 씨는 “예술계의 흐름을 선택하는 게이트키핑을 서구에서 주도하고 있지만 콘텐츠의 한계를 맞닥뜨린 지 오래”라며 “아시아 컬렉터들이 더 활발히 글로벌 아트페어에 참여해 새로운 균형을 만들 때 진정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페어에서 발행하는 일간 소식지 ‘아트뉴스페이퍼’는 “프랑스 피악의 중국 VIP 수가 지난해보다 8배나 늘어난 것에 자극받은 영국 정부가 중국인 방문객에 대한 비자 정책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불어든 ‘단색화’ 바람도 아시아권의 약진을 뚜렷이 보여준다. 프리뷰를 둘러본 조앤 기 미국 미시간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미국과 프랑스 갤러리도 함께 단색화를 소개하면서, 단색화 붐이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세계 미술사의 중요한 사건임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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