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되는 DC(할인)가 왜 아까는 안 되냐고! 내가 누군지 알아? 야, 됐고, 점장 나오라고 그래.”
2010년 11월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내 남성 정장 매장. 그야말로 ‘진상손님’이었다. 오자마자 백화점 간부를 안다며 다짜고짜 할인을 요구하는 상황. 안 된다고 했지만 하도 요구를 해 점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약간 할인을 해주라는 답이 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왜 말이 바뀌느냐며 저 난리다. 아내와 딸과 같이 왔는데도 욕을 하며 막무가내. 더 서러운 건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성질대로라면 한판 대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 을 중의 을, 백화점 판매원이니까. 내 이름은 정효정(당시 31세)이다.
“남자만 하는 일, 그런 게 어디 있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얼마 전 본 광경이 떠올랐다. 다른 매장에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그 애. 걔는 아예 매장 뒤로 끌려가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야 했다. “그래, 걔보단 그래도 낫잖아. 손님은 왕이니까….”
하지만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앞 매장 언니와 수다를 떨며 종종 진로 상담을 하곤 했다. “너 손재주 있는 편이잖아. 재봉틀은 어때?” 재봉틀 학원을 다니며 의류를 만드는 법을 배워봤지만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같은 건?” 역시나 별로…. “웨딩은 어때?” 그건 백화점에서처럼 결국 판매하는 거잖아. 손님한테 판매하는 직업 말고 다른 건 없을까?
그런데 묘하게 끌리던 것이 하나 있다. 재봉틀 학원 강사가 추천해줬던 한국폴리텍대학 진학. 어떤 학과가 있나 훑어 보다 항공정비학과를 발견했다.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끌렸다. 손님을 대하는 일도 아니면서 내가 만들고 고친 무언가가 사람들을 싣고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람찰 듯했다. 기술을 배우면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재밌을 것 같아. 하지만 여자가 하기엔 좀 힘들지 않으려나….”
하지만 전혀 그 문제로 고민은 되지 않았다. 나름 내 인생은 남자들의 영역이라는 곳에 도전하면서 살아온 인생이니까.
사실 언니만 2명이 있는 데다 여중 여고를 나와서 고교 졸업 때까지는 남자들과 마주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여성스러운 성격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도 치마를 입으면 싫다고 울며 바지로 갈아입혀 줘야 학교에 가곤 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동대문이나 명동 길거리에 있는 신발 매장 등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마다 항상 여자는 매장에서, 남자는 창고에서 일하는 게 공식처럼 돼 있었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됐지만 남자들이 항상 그 이유로 생색내는 건 두고 보지 못했다. 매장에서 창고에 주문을 전달할 때 전달이 잘못되면 남자들이 짜증을 내며 항상 했던 말.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건 여자는 못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넘어가지 못해 꼭 다툼이 났다. 결국 “내가 하면 되잖아”라며 어떻게든 우겨서 그 일을 했다. 물론 실제로 힘들긴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해낼 때마다 묘하게 드는 성취감이 있었다. “그래, 정비라고 남자만 하란 법 있나.”
하지만 항공정비학과는 수도권에서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꼭 항공기 정비일 필요는 없잖아.” 그때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봤던 멋있는 차가 떠올랐다. 닛산 스카이라인 GTR. “그래, 자동차 정비도 괜찮겠는데….”
7년간 몸담았던 백화점 판매원 경력을 뒤로하고 자동차 전문 교육기관인 한국오토모티브컬리지(HK) 자동차정비튜닝학과에 진학하며 자동차와 인연을 맺기로 했다. 2012년, 내 나이 서른세 살이었다.
국내 유일의 여성 미캐닉(Mechanic·차의 튜닝과 차량 점검, 조정, 수리 등을 담당하는 정비 전문가)으로
“그런 걸 왜 해. 돈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힘들 텐데.”
당장 부모님부터 자동차 정비를 배우겠다는 딸을 고깝게 봤다. 예전에 잠시 중고차 판매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특히 더했다. 동네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어르신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갑자기 웬 자동차 정비?”
어차피 처음부터 지지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 수밖에….
입학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여자는 보기 드문 존재였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240여 명이 재학하고 있는 HK에서 고작 4명인 여자, 그중에서도 최고령 학생으로 등록했다. 입학을 하자 남자들만 모인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존재가 됐다. 또 열 살 가까이 어린 남자애들로부터는 내내 장난의 대상이 됐다. 그렇게 생활하며 자동차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차와 정비에 대해 배우는 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실무 위주로 교육이 되다 보니 지루하진 않았다. 그동안 겉으로 디자인 정도만 봐왔던 차를 낱낱이 뜯어보면서 차가 굴러가는 원리를 조금씩 터득해 갔다.
정비를 배우다 보면 손과 얼굴에 기름이 묻는 건 당연하다. 처음엔 약간 꺼려지기도 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어느새 그 냄새와 느낌이 좋아졌다. 손에 물집도 많이 잡히고 거칠어졌지만 그럴수록 점점 정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부품을 분해해서 그 안에 든 부속물을 확인하는 재미,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낼 때의 쾌감을 계속 찾게 됐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기름을 묻혀 조립하고 제자리에 장착시킬 때면 마치 내가 세상을 조종하는 기분이 들었다. 플라모델이나 레고 조립에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자동차부품 조립은 재밌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자동차 정비를 배워갈 무렵. 수업을 위해 전남 영암군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을 찾을 일이 있었다. HK가 후원하는 록타이트-HK 레이싱팀 미캐닉들의 활동 모습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박진호 록타이트-HK 팀 치프미캐닉(38)을 만나고 약간 친분을 쌓게 됐다.
얼마 후 박 치프미캐닉이 본인 이름을 건 정비업체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했다. 곧 “한번 여기서 일해보지 않을래”라는 제안이 왔다. 일단 방학 동안에만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을 할 때마다 “잘한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실제로 잘한다기보다는 사기를 북돋워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백화점 판매원 때 그 많던 ‘진상손님’들이 떠올랐다. 점차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레이싱팀 미캐닉이 됐다. 국내에서 여성 미캐닉은 현재로선 나밖에 없다. 명동 신발 매장에서 그렇게도 남자들이 하던 일에 ‘나도 해볼래’라며 도전장을 내밀며 살았더니 인생이 이런 쪽으로 흘러가는구나 싶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남자들과 벌였던 수많은 다툼이 ‘국내 유일 여성 미캐닉’이 되기 위한 것이었나 싶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미캐닉으로 사는 법
“야, 아까 그 임팩(자동차 정비공구) 어디다 뒀어? 내가 제대로 챙겨 놓으라고 안 했냐? 조금 이따 바로 경기 들어가. 빨리 찾아와.”
지난달 영암에서 열린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 4차전 제네시스 쿠페 챔피언십 결승 직전. 경기가 있는 주말이면 미캐닉들은 항상 시간에 쫓긴다. 드라이버가 요구한 대로 차를 튜닝해 완벽한 상태의 차로 만드는 것이 미캐닉의 사명. 연습주행을 마친 선수들이 “브레이크가 좀 미끄러지는 것 같은데”라든가 “기어가 2단으로 잘 안 들어가”라며 수리를 주문한다. 간단한 거라면 괜찮지만 부품을 아예 뜯어 다시 조립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현장에 부품이 없는 경우. 어떻게든 부품을 구해서 외진 곳에 있는 서킷까지 가져오기 위해 미캐닉들은 온갖 곳에 전화를 걸고 부품점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야! 충돌, 충돌! 어서 핏스톱(경기 중 부품의 교체를 위해 차고로 들어오는 것) 준비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결승전 도중 김장래 선수(35·스피젠레이싱)의 차가 다른 차와 충돌한 것. 드라이버가 충돌의 여파로 핸들에 문제가 생겼다며 무전으로 알려왔다. 긴급하게 핏스톱을 해야 할 상황. 모든 미캐닉이 초긴장한 상태로 서킷에서 들어온 차에 달라붙었다.
진단해 본 결과 충돌로 핸들과 연결된 암(arm) 부품이 구부러진 것으로 드러났다. 빨리 교체하기가 힘든 부품이어서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결국 15분 정도 뒤에야 차는 다시 경주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 됐지만 결승전에서 일어난 일이라 미캐닉들의 고생은 그나마 덜한 편이다. 연습이나 예선 중 차에 사고가 나거나 뒤집히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최악. 바로 다음 날 경기 전까지 사고 차량을 다시 최상의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미캐닉들은 밤을 새워가며 차와 씨름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없이 드라이버가 좋은 성적을 내긴 힘들다. 실제로 결승 전날 사고가 났던 채널A 동아일보팀 전인호 선수(26)가 그 다음 날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밤새도록 차에 매달려 있던 미캐닉들 덕분이었다.
미캐닉이 단순히 차량 수리와 정비만 하는 건 아니다. 대회 주최 측에서 정한 온갖 부품의 규격을 제대로 숙지하고 그에 맞는 것을 썼는지 점검해야 뒤탈이 없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우승자를 다수 배출한 팀이 포인트를 모두 몰수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퀴 부분에 쓰이는 허브 부품을 규격보다 넓은 접지면을 가진 것으로 썼기 때문이다. 허브 접지면이 넓으면 차의 코너링이 좋아진다.
국내 프로 레이싱팀에서 활동하는 미캐닉은 150여 명. 그중 유일한 여성으로 패독(경주차 정비 등을 위해 서킷의 트랙 바깥쪽에 마련된 특별구역)을 누비는 정 씨. 타이어처럼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는 힘이 부치기도 하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터졌다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기계만 닦고 조인다고 미캐닉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자동차 공부는 물론이고 데이터나 통계 분야도 공부할 점이 정말 많아요.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이 될 때까지 해보고 싶어요.” 정 씨는 얼마 전 오른팔에 ‘Nolite timere’라는 문신을 새겨 넣었다. 라틴어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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