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고 와 그를, 그 만남을 생각하니 아주 오래된 일인 것도 같고,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와의 만남은 ‘친견(親見)’이란 이름으로 무거웠지만, 나는 그를 아주 가까이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그토록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 바로 그를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아등바등 사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그의 한마디는 내 삶의 지향성을 바꾸어 놓았다. “네 마음이 책이다. 네가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
그가 바로 송담 스님이다. 전설적인 선지식 전강대선사가 남긴 유일한 사리라 일컬어지는 은둔형 현자. 학자를 만나면 지식이 쌓이지만 현자를 만나면 삶이 바뀐다는 말이 내게서 현실이 되고 있었다.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거둬들이는 법을 배우며 내 삶은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젊은 시간 나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지인들을 안타까워하며 고통스러웠고, 우리의 선한 의지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 분노하며 고통스러웠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접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그저 사랑한 만큼 지옥을 경험해야 하는 이상한 법칙을 운명이라 여기며 반복했던 것이다.
송담 스님이 말씀하셨다. “사람 욕심 내지 마라. 차라리 욕심 내고 화를 내고 상처를 받는 나의 마음자락을 살펴라. 욕심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릇된 마음을 내는 것이고, 화를 내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보고 그릇된 마음을 내는 것이다.”
문제는 나에게, 내 마음에 있었다. 동일한 경험들이 옷만 바꿔 입고 계속 찾아드는 것은 그런 경험 패턴 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배울 때까지 경험은 반복된다. 시선이 나의 마음으로 돌아오니 그동안 내가 나의 마음을 얼마나 옥죄고 있었는지가 보였다. 선의 이름으로, 당위의 이름으로, 죄책으로, 바로 내가 나 자신을 포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담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의 종교 비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종교를 잘 믿고, 내 마음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내 변화의 중심에 송담 스님이 있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내 마음의 스승이다. 나는 안다. 나처럼 스님을 스승으로 여기고 마음을 돌보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 송담 스님이 탈종을 하셨단다. 10년 묵언, 7년 만행,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법문하시는 것 외에 세상에 나오시지 않는, 인욕과 정진의 별이 스스로 조계종단을 걸어 나오셨을 때는 종단의 세속화가 도를 넘어 정진의 장애가 된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들을 모아서는 나는 탈종을 할 테니 나의 탈종으로 너희들이 불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다른 스승을 찾아가라고 선언하셨단다.
조계종은 별을 잃었다. 별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그들이, 그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경책으로, 화두로 품을 정도로는 희망이 있을까? 어쨌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다. 탈종하면서 제자들을 향해 어떠한 시시비비도 가리지 말고 정진에 힘쓰라 하신 스님의 뜻은 ‘조계종 비판’이 아니라 ‘자기’를 바로 보는 정진일 테니.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