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의 뫔길]“터놓고 얘기합시다” 교황은 토론 애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4일 03시 00분


최근 폐막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최근 폐막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19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막을 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는 동성애자에 대해 교회 공동체의 환대가 필요하다는 예비보고서(초안)를 공개해 지구촌 차원의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알려진 대로 초안의 이 항목과,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에 대한 영성체 허용과 관련한 두 항목은 찬반 투표에서 3분의 2를 얻지 못해 빠졌습니다.

큰 이슈에 묻혀 가려져 있지만 교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프란치스코식 열린 토론’의 성과입니다. 과거에는 교황청 관리들이 동성애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번 시노드는 넓은 개방성과 활발한 토론이라는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가톨릭교회의 분열로 외부에 비칠 만큼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이런 갈등의 표출 자체가 현 교황이 이끄는 ‘베드로’호의 가장 큰 변화라는 거죠.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이 청중으로 참여한 특강도 프란치스코식 스타일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시노드 초반 초청된 호주 부부는 성생활의 즐거움을 말하면서 55년간 건강하게 유지된 결혼생활의 비결이 성적 매력이라는 ‘노하우’를 전수했죠. 가톨릭 내부의 전통주의자라면 강의 자체를 동성애 논쟁을 앞둔 교황의 ‘노림수’로 여겨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외부에서는 이 강의를 경청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모습이 완고한 교황청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졌습니다. 나이 든 독신 성직자들이 세상 속 평범한 가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구나 하는 거죠.

교황은 시노드에서도 권위를 앞세운 지시보다는 솔직한 대화를 계속 주문했습니다. 시노드가 끝난 뒤 “만약 모든 것이 합의되거나 또는 조용하기만 한 평화 속에 침묵만 있었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황은 라틴아메리카 주교단으로 활동할 당시부터 열정적 설득보다는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열린 토론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교황이 솔직한 대화를 원하는 수준이 거의 ‘강요’로 느껴질 정도라고 하네요.

시노드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교황은 “교회의 문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활짝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주체를 청와대나 국회와 정당, 기업과 관청, 교회와 사찰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최고 책임자 아닐까요.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동성애#교황청#프란치스코#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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