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적과의 ‘콜라보’, 오페라 ‘오텔로’를 낳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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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래버레이션(협업, 합작)’이 시대의 화두입니다. 전통적으로 음악 창작은 ‘콜라보’가 힘든 분야였습니다. 천재가 밀실에서 영감을 끌어올리며 수행하는 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자 작업하기 불가능한 음악 장르도 있습니다. 오페라가 한 예입니다. 좋은 대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작곡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대본부터 작곡까지 혼자 해낸 바그너와 같은 사례도 있습니다.

주세페 베르디가 74세의 고령에 쓴 오페라 ‘오텔로’(1887년)는 멋진 컬래버레이션의 사례입니다. 대본작가이자 소설가, 평론가, 그리고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를 쓴 작곡가이기도 했던 아리고 보이토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소재로 멋진 오페라를 작곡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베르디”라며 대본을 써서 제공했거든요. 보이토는 이후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 ‘팔스타프’ 대본도 쓰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베르디와 보이토가 ‘한때의 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보이토는 1860년대 이탈리아 문화계 ‘스카필리아투라’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봉두난발’이라는 뜻의 이 운동은 이탈리아 문화계의 중심이었던 작곡가 베르디나 시인 겸 소설가 만초니가 ‘낡고 퇴행적인 예술’에 머물러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독일과 프랑스의 예술을 선진적 기법의 모범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베르디와 스카필리아투라 주인공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베르디는 ‘보이토가 쓴 대본을 검토해 보자’는 출판사 리코르디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갈등은 가라앉았습니다. 스카필리아투라 음악가들은 여전히 독일과 프랑스에서 영감을 찾았지만 베르디가 가진 역량과 깊이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베르디 역시 프랑스 오페라와 바그너의 독일 오페라가 가진 장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화해 이후’의 산물인 베르디 만년의 두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한번 ‘진영’이 갈라지면 적대감을 버리지 못하는 사회 전반의 폐해가 문화계에서도 심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국립오페라단은 11월 6∼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힘과 강력한 심리묘사가 빛나는 베르디의 걸작 ‘오텔로’를 올립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오텔로#컬래버레이션#콜라보#베르디#보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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