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남녀-빈부 차별 거부하는 옷”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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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서 ‘청바지 특별전’ 英 문화인류학자 대니얼 밀러 교수

대니얼 밀러 런던대(UCL) 교수가 국립민속박물관의 ‘청바지 특별전’에 전시된 다양한 나라에서 기증받은 청바지 앞에 앉아 있다. 이 전시회는 그의 ‘글로벌 데님’ 연구에서 비롯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니얼 밀러 런던대(UCL) 교수가 국립민속박물관의 ‘청바지 특별전’에 전시된 다양한 나라에서 기증받은 청바지 앞에 앉아 있다. 이 전시회는 그의 ‘글로벌 데님’ 연구에서 비롯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박물관이라면 왠지 고색창연한 유물로 채워져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시장에 온통 흔해빠진 청바지만 걸린 박물관이 있다면?

박물관에 대한 편견을 깨는 ‘청바지’ 특별전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내년 2월 23일까지 열린다. 청바지를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회는 국내 박물관에선 유례가 없다.

청바지 특별전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문화인류학자 대니얼 밀러 런던대(UCL) 교수의 ‘글로벌 데님(세계의 청바지) 연구’에서 나왔다. 그는 일상의 도구를 통해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하는 ‘물질문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민속박물관 주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밀러 교수를 최근 만났다.

짙은 청색의 블루진을 입은 밀러 교수는 “서울 거리를 지켜보니 런던처럼 행인의 절반 이상이 청바지를 입고 있더라”며 운을 뗐다. 그는 “연구하면서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즐겨 입는 이유를 처음 물었을 때 아무도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며 “우린 특별한 데에만 관심을 쏟을 뿐 정작 중요한 일상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밀러 교수는 2007년부터 3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미국 브라질 인도 터키 중국 등 12개국에 걸쳐 광범한 청바지 이용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청바지는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격식과 비격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 이른바 ‘탈 기호학적(post-semiotic)’ 의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어디서나 어떤 옷과 함께 입어도 어울리는 독특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밀러 교수는 “조사 결과 사람들이 데님 소재이면서 청색인 청바지라야 중성적이고 중립적인 옷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바지가 글로벌 문화의 상징인 동시에 지역마다 고유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예컨대 인도 카누르 지역에선 청바지 입은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성적 타락으로 간주해 여성들은 헐렁한 블라우스로 청바지를 가린 채 입는다. 반면 브라질에서 청바지는 몸의 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시대마다 청바지에 대한 개념도 바뀐다. 밀러 교수는 “1950년대 런던 거리에서 청바지를 입은 여성이 보수적인 남성에게 해코지를 당했다”며 “요즘 영국 여성들은 입다가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몸에 꼭 끼는 청바지만 선호한다”고 말했다.

청바지의 인기는 경쟁 위주의 현대사회와 관련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밀러 교수는 “우린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판단을 당하는 데 지쳐 있다”며 “청바지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손쉽게 걸치는 데 유용하다”고 했다.

값싸고, 심지어 해지거나 찢어져도 멋으로 입을 수 있는 청바지는 끊임없는 소비를 주장하는 자본주의 문화와 거리가 있다. 그는 “경제적 논리로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바로 청바지”라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청바지#대니얼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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