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보았을 때 할 수 있는 반응은 여러 가지입니다. 소리를 지르며 달아날 수도 있고, 숨어서 지켜보거나 때려잡을 도구를 찾기도 하겠지요. 뿔쇠똥구리를 발견한 주인공 에스테반은 ‘아무 생각 없이’ 신발을 치켜듭니다. 뿔쇠똥구리는 자기에게 닥칠 위험 따윈 모른 채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신발로 내리치려던 에스테반은 순간 궁금해집니다. 쇠똥구리는 어느 쪽으로, 뭘 하러 가는 걸까요. 에스테반은 가만히 신발을 내려놓고 몸을 숙여 뿔쇠똥구리와 눈을 맞춥니다.
글을 쓴 호르헤 루한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멕시코에 살면서 어린이극을 공연하는 작가입니다. 공연에서 자신의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직접 기타와 건반을 연주하며 노래도 부릅니다. 치아라 카레르의 그림은 재치와 장난기가 넘칩니다. 불규칙하게 찢어낸 종이를 이리저리 붙이고, 문지르거나 긁어낸 물감들의 흔적을 살려 이야기에 힘을 실어줍니다. 붓과 펜, 손가락이 도구가 되고 거기에 잉크와 색연필들의 효과도 더합니다. 함축된 글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그림이 넉넉하게 풀어냅니다. 그림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낮은 연령의 아이들에게 생태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대개 실천 단계에서 어려움에 부닥칩니다. 훼손 과정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어른들의 방식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뿔쇠똥구리와 마주친 날’은 그런 면에서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인류와 함께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뿔쇠똥구리는 자기를 보고 있는 에스테반에게로 성큼 다가와 앞발을 치켜듭니다. 뒤이어 에스테반과 뿔쇠똥구리의 모습이 번갈아 나오다가 둘 다 느릿느릿 제 갈 길을 갑니다. 신발로 내리치지 않은 에스테반, 치켜든 앞발을 내린 뿔쇠똥구리는 함께 살아갑니다. 오늘 하루야 그냥 흘러가겠지만 둘은 마주쳤던 순간을 아마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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