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미생’서 오과장역 이성민
서로 희생양 삼는 기업문화 넘어 사람 이야기에 시청자들 공감
“지금 우리 그래가요, 촬영을 하다 와서 아직 임시완으로 돌아오질 못했어요. 임시완은 훨씬 똑똑한데….”
5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의 tvN ‘미생’ 촬영 현장에서 만난 이성민은 주연인 장그래 역의 임시완을 ‘그래’, 영업 3팀 김동식 대리 역을 맡은 김대명을 ‘김 대리’라고 불렀다. “어제 그래랑 김 대리가 (촬영 현장에서) 먼저 퇴근했다. 굉장히 짜증났다”며 툭 뱉는 모습은 드라마 속 오상식 과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배우들이 진짜 회사원이 되어 가고 있어요. 아침에 도착하면 점심 메뉴 고민하고, 촬영 일찍 끝나면 맥주 한잔하고 싶고, 다음 날엔 촬영장에 오고 싶지가 않고 그렇습니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미생은 바둑 기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장그래가 프로 입단에 실패한 뒤 한 상사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다. 직장인의 비애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미생은 많은 회사원의 지지를 받으며 방송 6회 만에 시청률이 4%대로 올랐다.
“촬영하면서 회사라는 곳이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지금까지는 직장인의 애환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쾌감을 느낄 만한 내용이 더 많이 나올 겁니다.”
이성민은 촬영 시작 약 1년 전 출연진 중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됐을 정도로 드라마에서 비중이 크다. 장그래에 초점을 맞췄던 웹툰과 달리 드라마는 오 과장이 겪는 희로애락에 따라 춤춘다.
이런 부담을 극복하기 위한 무기는 ‘디테일’이다. 사무실에선 ‘회사원의 전투화’인 슬리퍼를 신지만, 회의나 상사와의 면담이 있을 땐 꼭 구두로 갈아 신는다. 화면엔 상반신만 나오지만 꼭 그렇게 한다. 바이어 미팅을 가기 전 껌을 씹고 입을 닦는 장면도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친척에게 물어보고 준비한 세심한 연기다.
또 다른 무기는 배우들 간 호흡이다. 이성민의 표현에 따르면 ‘심하게 착한’ 임시완을 비롯해 모든 배우와 함께 어떤 애드리브도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둔다. “서로 허물이 없어요.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죠.”
이성민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아무런 연고도 없던 대구에서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절은 “외로웠다”. 그의 과거가 드라마 속 장그래와 맞닿는 지점이다. “그래처럼 ‘버틴다’는 생각으로만 살던 시절 극단 선배가 제 연기를 보고선 제 이름을 물어보고 칭찬을 해줬던 적이 있어요. 그 기억이 뒤로도 큰 힘이 됐죠. 장그래가 오 과장의 애정으로 성장하는 것처럼요.”
그는 이제 자신이 배우로서 오 과장을 닮아가고 있다고 했다. “예전엔 한 배역, 한 작품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일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오 과장처럼 이번 연기가 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요. ‘일은 놓아도 사람은 놓지 않는다’는 영업 3팀의 모토처럼 모두 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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