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경호처 부장 정학(유준상 이건명 최재웅 강태을)이 산 한가운데 서 있다가 ‘거리에서’를 부르며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산은 서서히 낮아지고 정학이 무대 한가운데로 내려오면 무대 배경은 전봇대와 가로수 영상이 비치는 거리로 변한다. 검은색 대형 천을 아래위 두 조각으로 찢어낸 듯 만든 산이 무대를 꽉 채워 스크린이 된 것이다.
고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엮어 장유정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창작 뮤지컬 ‘그날들’은 무대가 88번 전환된다. 창작 뮤지컬의 경우 무대 전환이 보통 20∼30번인데 ‘그날들’은 3, 4배 더 바뀌는 셈이다. 무대디자이너 박동우 씨는 “극본을 본 순간 영화 시나리오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들’은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대통령의 딸과 경호원이 함께 실종되는 사건과 정학의 파트너 무영(김승대 오종혁 지창욱 규현)이 20년 전 경호를 맡은 여성과 사라진 사건이 교차된다. 지난해 초연돼 현재 재공연되고 있다.
‘이등병의 편지’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서정성 짙은 노래는 강하고 남성적인 느낌으로 편곡됐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무대는 작품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연주회장이 경호훈련장으로 바뀌고, 청와대 내 비밀 자택이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책이 빽빽이 꽂힌 도서관이 펼쳐진다.
사건의 핵심 장소인 산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져 수많은 무대 전환이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 산을 조형물로 만드는 것도 검토했지만 이동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천으로 만들었다. 벨루어 소재로 만든 폭 12m, 높이 8m 산은 아래위 두 조각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곧바로 나타나고 사라져 ‘산→경호원 샤워실→산’ 등의 변화가 수월해졌다. 산 아래 조각 일부에는 천 뒤에 합판을 대 조형물처럼 단단한 느낌을 준다. 벚꽃, 악보 등 영상을 비출 때는 굵은 실로 만든 커튼을 산 앞에 드리워 하얀색 스크린이 되게 했다. 박 씨는 “산의 가로로 갈라진 공간은 경호 시범을 보일 때는 푸른색, 쫓기던 경호원 무영이 홀로 서 있을 때는 붉은색 조명으로 채워 냉철함과 긴박감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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