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 좀 빠져도 입에 살살 녹는 맛, 허허로움 속에 묘한 위안 주는 작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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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식도락 ②] 가나아트센터 리오넬 에스테브 展
빌레스토랑 돼지갈비 수비드

빌레스토랑의 돼지갈비 수비드 스테이크.
빌레스토랑의 돼지갈비 수비드 스테이크.
수비드(sous-vide)는 찬반이 갈리는 조리법이다. 진공 밀폐 포장한 고기를 따뜻한 물 속에 담가 12시간 이상 서서히 데워 익힌다. ‘재료 겉과 속을 균일하게 가열해 수분을 유지한다’는 찬사를 듣지만 ‘퍽퍽한 식감과 누린내라는 결말을 향해 달리는 실속 없는 마라톤’이라는 비판도 있다.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한 방법인데 수년 전부터 국내 여러 레스토랑이 유행처럼 선보이고 있다.

8일 밤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 1층 빌레스토랑. 메인 요리로 돼지갈비 수비드 스테이크가 나왔다. 마주 앉은 김현구 셰프(42)는 “고기를 마리네이드(향미액)에 하루 동안 담가뒀다가 그 다음 날 물에 익혀 다시 하루 뒤 팬에 지져 내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치를 살피며 조리법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아 뭐, 사실 저도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하지만 손님들이 찾으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던진 어설픈 도발이 망설임 없는 답변 한 방에 꺾였다. “단골 동네 주민이 가장 소중한 고객”이라는 김 셰프는 “모양내는 재주가 없어서 요리를 담아내는 모양새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안이한 것 아닐까.’ 딴생각을 하며 한 점 잘라 씹었다. 씹히지 않고 녹는다. 모양 내지 않고 풍성하게 끼얹은 돼지등뼈소스가 누린내와 퍽퍽함을 꽉 잡아 누른다.

평창동은 마음먹고 발걸음하기 쉽지 않은 동네다. 프랑스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가 설계해 1998년 완공된 가나아트센터는 한적한 거리 모습을 그대로 끌어들였다. 넉넉한 공간에 앉힌 동선(動線)이 안이한 듯 거리낌 없이 효율적이다.

리오넬 에스테브가 2013년 제작한 설치물(부분). 가나아트센터 제공
리오넬 에스테브가 2013년 제작한 설치물(부분). 가나아트센터 제공
2층에선 오늘까지 프랑스 작가 리오넬 에스테브의 개인전이 열린다. 태양계 모형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대형 설치물 ‘There Are No Circles(여기 원은 없다)’ 뒤로 유리판 뒤에 색종이를 잘라 사열식 병사들처럼 붙인 무제 작품이 걸려 있다. 언뜻 시시하고 허허롭다. 하지만 발걸음을 앞뒤로 옮겨보니 떠나기 싫어진다. 가까이 살피면 그저 공업용 종잇조각 묶음과 아크릴 물감으로 대충 찍은 점일 뿐인데. 한발 물러나 바라보는 이미지가 예상 못한 위로를 안긴다.

평창동은 부촌(富村)이다. 빌레스토랑은 그 한복판에서 ‘동네 밥집’을 추구한다. 김 셰프는 “푸아그라(거위 간) 같은 고급 재료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노량진에서 그날그날 골라 온 해물의 최대치를 뽑아내 미각에 전하는 데 집중한다. 정장 입고 폼 잡기는 모양새가 민망하다. 하지만 묘한 여유의 위로를 안긴다. 한발 다가가 입에 넣어 씹기 전에는 예상 못할 위로다. 02-395-2783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리오넬 에스테브#빌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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