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로에서 만난 ‘토이’의 유희열은 “라디오 DJ가 선곡하듯 앨범을 구성하고, 연출자가 연기자를 고르듯 객원가수를 선택했다. 훌륭한 아역(이수현)도 캐스팅할 수 있어 좋았다”며 웃었다. 안테나뮤직 제공
“20대 땐 피아노 앞에서 사흘 밤을 새울 수 있었어요. (노래를) 만들어놓고 너무 가슴이 뛰어 ‘오, 신이시여!’ 했던 적도 있죠. 이젠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불안감, 그걸 (작업)시간으로 채웠어요. 취업준비생이 도서관에 앉아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듯, 지난 3년간 피아노 앞에 꾸준히 앉는 것으로….”
유희열(43)의 ‘토이’가 18일 새 앨범을 낸다. 7년 만이다. ‘뜨거운 안녕’이 실린 6집 ‘땡큐’(2007년) 이후 긴 음악적 침묵은 그를 작곡가나 가수보다 TV 출연자로 각인시켰다.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로의 작은 공연장에서 만난 유희열은 “앨범 제목을 ‘다시 처음으로’를 뜻하는 음악용어 ‘다 카포’(사진)로 지었다. 열정을 되찾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그는 13곡, 57분짜리 새 앨범 전체를 들려줬다. 발라드, 모던 록, 퓨전 재즈, 전자음악의 영향이 고루 담긴 도시적인 ‘토이 사운드’는 그대로였다. 성시경, 이적, 김동률, 선우정아, 다이나믹 듀오, 권진아, 김예림, 빈지노, 이수현(악동뮤지션), 자이언티, 크러쉬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좋은 사람’ ‘바램’으로 토이를 대변한 김연우, 김형중, 변재원의 목소리는 없었다. 유희열은 “그들과 작업한 곡도 있지만 앨범 전체 색깔과 달라 발표를 미뤘다”고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객원가수는 이수현이다. 수록곡 ‘굿바이 선, 굿바이 문’을 부른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지’가 나온 1999년에 태어났다. 뿅뿅 대는 복고풍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순정한 가사의 결합이 네온사인으로 붓질한 수채화 같다. 유희열은 “F R 데이비드의 ‘워즈’를 연상하며 1980년대 뉴웨이브 스타일로 편곡했다”고 했다. “서울시를 지키는 소녀 천사가 하늘을 활강하는 만화 같은 장면을 상상하며 만들었어요. 이 느낌을 표현할 사람은 수현 양밖에 없었죠.”
이적 김동률 유희열의 노래를 처음 한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것도 ‘다 카포’의 장점이다. 질주하는 ‘리셋’을 이적이, 관조적인 ‘너의 바다에 머무네’를 김동률이 불렀다. “예전엔 다들 뾰족했던 부분이 나이 들면서 사라져 협업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술 한잔 기울이며 7년 전이라면 못 했을 얘기들도 주고받았죠.”
타이틀 곡은 “오랜만에 쓴 토이표 발라드”라는 ‘세 사람’이다. 성시경이 불렀다. ‘발라드 황태자’도 난도가 높은 이 곡(‘세 사람’) 녹음에 이틀이나 실패했다고 했다. “시경이가 스스로 10일간 금연한 뒤 다시 와서 멋지게 해냈어요. 끝내고 담배를 마구 피워댔어요. ‘살 것 같다’면서.”
선우정아가 부른 ‘언제나 타인’은 고풍스러운 전기기타와 현악 연주에 퇴폐적인 울림의 여성 보컬이 어우러져 인상적인 곡. 유희열은 “60, 70년대 이탈리아 B급 에로영화 OST의 분위기를 내보고 싶었다”며 음흉하게 웃었다.
마지막 곡 ‘취한 밤’은 신해철의 부고를 들은 밤, 유희열이 술에 잔뜩 취해 만든 노래다. “해철 형은 떠났지만 저는 그 감정을 갖고 곡을 쓰고 있더라고요. 직업이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유희열의 본업은 가수, 작곡가다. 그가 걸어 돌아왔다. 시각의 세계를 떠나 다시 청각의 세계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