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오토리버스 시절이 그리워질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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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30일 일요일 비. 기승전딸깍.
#134 장기하와 얼굴들 ‘별일 없었니’(2014년)

올해 10월 3집을 낸 록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두루두루amc 제공
올해 10월 3집을 낸 록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두루두루amc 제공
‘딸깍!’

20년 전쯤. 매일 밤 세상이 뒤집히고 새로운 지평선이 열렸는데 그때 이런 소리가 났다. 워크맨과 이어폰 없인 잠들 수 없던 시절 얘기다. 비몽사몽이 음악과 결합된 몽롱한 상태는 대개 카세트테이프의 A면이 다 돌 때까지 계속됐다. A면 마지막 곡이 끝나면 ‘스으으으으으읍…’ 하는 잡음이 들린 뒤, B면으로 ‘오토리버스’되는 ‘딸깍!’

‘실에 매달려./해류가 바뀔 거야./날 당신에게로 데려다줄…’(‘오션스’) 에디 베더의 애절한 목소리가 B면 첫 곡으로 정적과 내 선잠을 동시에 깨부수고 나오던 날의 수면제는 펄 잼의 ‘텐’(1991년)이었다. 앨범은 첫 곡은 물론이고 A면 마지막 곡, B면 첫 곡까지도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MP3 스트리밍은 ‘시냇물’ ‘줄줄 흐르다’는 ‘스트림’의 원뜻처럼 음악을 수돗물 같은 걸로 바꿨다. 매달 몇천 원 내고 내킬 때마다 수도꼭지 틀어 고막을 씻는 거다. ‘최신 가요 테이프’만큼이나 개별 가수의 앨범이 잘 팔리던 시절과 달리 요즘 청취자 다수가 음원 차트 상위권 노래를 주로 소비하니 앨범 곡 순서의 의미는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많은 뮤지션은 여전히 각본가, 연출자, 큐레이터, DJ처럼 자기 앨범을 설계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3집 수록 곡을 CD와 디지털 앨범에 서로 다른 순서로 배치했다. CD에만 수록한, 안부를 묻는 첫 곡 ‘별일 없었니’부터 흘러가는 앨범 전체의 드라마틱한 분위기는 디지털 앨범으론 느낄 수 없다.

십센치는 3집 첫 곡 ‘3집에 대한 부담감’에 신작에 대한 고민을 담은 뒤 둘째 곡에 스타일의 반전이 있는 ‘담배왕 스모킹’을 이어 붙여 재밌는 효과를 줬다. “라디오 DJ처럼 수록 곡의 순서를 맞췄다”는 토이는 이번 7집을 2분 30초짜리 연주곡 ‘아무도 모른다’로 연다.

요즘 내 주변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사운드트랙 ‘오섬 믹스 볼륨 원’을 굳이 며칠 전 나온 카세트테이프 버전으로 샀다는 이들이 적잖다. ‘쿨’한 스트리밍 시대를 역행하는 고집쟁이 음악 질환자 바보들의 기행(奇行)이다.

연말이 되니 수돗물같이 마구 써서 과거의 하수도로 영원히 흘려보낸 시간이 피처럼 여겨진다. 아날로그 필름처럼 질기고 지루한 삶에도 가끔 오토리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 아픈 척 끙끙대다 다시 삶을 재생할 수 있게. 12월 31일이랑 1월 1일 사이에 한 5일짜리 ‘스으으으으으읍…’ 같은 거, 없나?

‘딸깍!’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오토리버스#장기하#십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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