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문화재 복원 전문기관 고등보존복원연구소(ISCR)를 다녀왔다. 성 아고스티노 성당의 제단화 ‘피에타와 산 조반니’는 2010년 3월부터 이곳에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4년이 훌쩍 넘었지만 복원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베네치아 산 자카리아 성당의 제단화 등 나머지 것들도 수년씩 복원이 진행 중이었다.
어둑어둑해진 넓은 작업실에는 연구원들이 별로 없어 스산했다. ‘늑장을 부리느라 그림 하나 복원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건가.’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겨울이 다가와 해가 짧아질수록 작업시간도 줄어든다고 했다. 회화 복원 시에는 자연채광 아래에서 진행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도나텔라 카베첼레 ISCR 소장은 “인공조명으로 그림을 보면 색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깃불이 없던 시대에 맞춰 복원을 해내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거대 석조물인 숭례문을 불과 5년 만에 복원한 한국의 속도전이 떠올랐다.
이들도 전통 방식으로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과학기술의 힘을 빌린다. 100% 원형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ISCR 회화복원실에선 화학안료를 담은 유리병들이 눈에 띄었다. 카베첼레 소장은 “전통 천연안료로 복원하는 게 원칙이지만 모든 부분을 100% 천연안료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숭례문 단청 복원을 위해 전통 제조방식이 이미 단절된 천연안료를 얻으려고 5년간 40억 원을 투입한다고 설명하자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사 천연안료를 찾더라도 제조법이 계승되지 않았다면 옛 방식과 같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피렌체 국립복원연구소(OPD)에서 만난 페테르 슈테베르크 연구원도 숭례문 복원에서 전통 천연안료를 구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는 “전통 방식은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일 출신인 그는 도나텔로의 역작 ‘막달라 마리아’(1455년 작) 조각상을 복원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가 채색한 곳은 원작의 색상과 확연한 차이가 났다. 관람객에게 어느 부분이 복원됐는지 일부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슈테베르크 연구원은 “예전과 똑같이 복원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해도 그건 복제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관람객의 눈을 속이지 않고 원작의 느낌을 충실히 전달하려는 유럽 문화재 복원 철학의 기품이 느껴졌다.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확인된 속도전과 원형 복원에 대한 집착이 조상들의 걸작을 오히려 훼손시키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