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시의 12월 추천작은 박장호 시인(39)의 ‘태양은 뜨자마자 물든 노을이었다’다. 2003년 ‘시와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포유류의 사랑’(문예중앙)에 실렸다. 추천엔 김요일 신용목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참여했다.
박 시인은 이번 시집을 “몸이라는 이름의 입체적인 구멍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에너지가 지나간 흔적”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은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천작을 썼다.
“노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내를 통해 알게 됐어요. 노을을 넋 놓고 바라보는 모습을 아내가 보고 알려준 것이지요. 자기부정에 익숙한 제게도 어딘가 감상할 수 있는 노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입술이 제 마음이 물든 노을이란 정서적 발견을 했어요. 고백하지 못한 마음이 물든 노을. 다가서고 싶은데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첫사랑의 기억이 이 시를 쓰게 한 것 같아요.”
장석주 시인은 “‘나’는 자연이 깃들어 만든 몸, 자연 그 자체이다. ‘몸’이 나무로 직립해 있으니 ‘누가 내게 이토록 기다란 다리를 주었을까요’라는 시구는 자연스럽다. 박장호는 사물들을 고집스럽게 시적 주체가 가진 몸의 표상으로 되돌림으로써 그만의 물활론적 상상세계를 건설한다”고 추천했다.
김요일 시인은 “참으로 새롭고, 황홀하다. 이제야 ‘재떨이가 있는 금연구역’ 같은 곳에서 세상과 등 돌리고 앉아 언어와 사랑에 빠진 등 넓은 시인의, 혼자 소유하던 어깨 너머의 아름다운 세상을 독자들도 제대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신용목 시인은 박지혜 시집 ‘햇빛’(문학과지성사)을 추천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말 속으로 들어와 슬픔을 말할 때, 행간에는 모든 의미의 옷을 벗은 채 하얀 속살로 떨고 있는 한 줄기 빛이 앉아 있다. 그 빛이 모든 마음이 머물다 가는 자리라는 것을 이 시집은 추위에 파랗게 얼어가는 입술로 속삭인다”고 했다.
이건청 시인은 정진혁 시집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현대시학)를 꼽았다. “일상 속에서 가져온 시적 제재들이 선연한 이미저리(Imagery)들로 호명되고 있으며, 시어들이 적당한 무게의 정서와 의미들을 실어 나르며 단아한 구조를 이뤄내고 있다. 단아한 구조는 오늘의 한국 시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믿는다.”
이원 시인은 김희업 시집 ‘비의 목록’(창비)을 골랐다. 그는 “김희업은 칼의 저밈과 비의 스밈을 엮어 ‘엄격한 위로’라는 이종교배 미학을 구축해냈다. ‘깊이가 깊을수록 칼은 본분을 다한 것’이라는 몸의 운명을 ‘바퀴도 없이 미끄러지는’ 노동의 삶 속으로 확장시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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