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하는가/히로세 히로타다 지음/이정희 옮김/232쪽·1만5000원·모요사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다 보니 단순히 ‘도서 리뷰’라는 차원을 넘어 한 번쯤 명심하고 머리에 담아 두어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년간 방재를 연구해온 저자는 재해심리학 차원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정상성(正常性) 바이어스(Bias)를 의심하라=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지진해일(쓰나미)이 도달하기까지 1시간 넘게 걸리는 장소에 있던 사람들도 일부 사망했다. 왜일까. 마음이 위험을 둔감하게 받아들이도록 구조화됐기 때문이다. 사소한 변화에 일일이 반응하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기 때문에 어느 수준까지의 이상(異常)은 정상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정도라고 판단한다. 재해 시 과도하게 안심하는 것이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동조성(同調性) 바이어스를 피하라=영화관 등 폐쇄된 공간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사고로 위장하는 실험을 한 결과 대다수 사람은 연기가 실내에 가득 차도 피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보다 집단으로 있을 때 피난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즉, 재해 시 많은 이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타인을 따라하려고 하다가 탈출할 타이밍을 놓치는 것. 위험을 느낀다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얼어붙는 증후군’을 깨라=재해를 겪으면 순간 전신이 마비된다. 생리심리적 현상이다. 크게 숨을 쉰다든지, 옆 사람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등의 행동을 해야 마비가 풀린다. 이후 공포가 감소하고 신체 능력이 극대화된다. 뇌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모든 에너지를 몸에 투입시키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오류=미국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있던 직원 중 상당수는 피할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많은 이가 경찰 지시에 따라 구조요원을 1시간가량 기다리다 빌딩이 무너지며 사망했다. 엄청나게 큰 규모의 재해는 전문가조차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접어야 한다.
▽‘패닉’ 신화에 속지 마라=재해 현장의 책임자들은 재해 상황을 제대로 알릴 경우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서로 밟거나 밀치다가 더 큰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정보를 축소해 알려주곤 한다. 하지만 1977년 미국 신시내티 클럽 화재 시 “불이 난 곳은 꽤 머니 천천히 대피하라”고 위험을 완화해 알리다 164명이 사망했다. 조사 결과 재해 시 적절한 가이드만 있다면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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