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아이들 싸움의 불문율… “코피 터지면 지는거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6일 03시 00분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다비드 칼리 글/세르주 블로크 그림·정혜경 옮김/40쪽·1만2800원/문학동네어린이

문학동네어린이 제공
문학동네어린이 제공
“누가 시작한 거야?” “왜 싸웠어?” 싸움을 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종종 답도 없는 질문을 합니다.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가 그 질문에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두 작가는 몇 해 전, 마지막 참호에 남은 두 병사 이야기로 전쟁의 무의미함을 역설적으로 풀어낸 그림책을 낸 바 있습니다. 이후 그들의 고민은 한층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증오로부터 시작한 어른들의 끝없는 싸움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누구보다 쉬운 언어로 설명합니다.

인류 출현 이후 싸움은 누구나, 사소한 이유로, 각기 다른 구실을 들어 시작하곤 했습니다. 엇비슷한 상대방과 마주쳐 째려보는 눈빛, 비뚤어진 입꼬리, 음흉하게 곱씹는 생각들만으로도 조건은 다 갖춰지며 싸움의 불씨는 순식간에 타오릅니다. 자칫 심각할 수 있는 싸움의 상황들로부터 한결 힘을 빼고 한두 걸음 물러나게 만드는 힘이 블로크의 그림에 있습니다. 아이들 손끝에서 망설임 없이 빠져나온 듯 자유로운 펜 선이 편안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능청맞기까지 한 칼리의 글 역시 ‘싸움’이란 단어가 주는 긴장과 흥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들의 공감의 폭을 넓혀줍니다. 우선, 싸움은 이래서 꼭 필요하답니다. 싸움은 팔다리 관절이 단련되고 혈액 순환이 촉진되어 산소 공급까지 원활해지는 완벽한 훈련이므로 다른 운동이 필요 없을 정도랍니다. 여기까진 꽤 진지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상대의 배를 조르는 그림 위에 위장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다고 말한 지점에서는 ‘어?’ 하며 배꼽을 잡게 만듭니다.

아이들 싸움은 놀이입니다. 불문율의 규칙을 따르게 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바로 비난이 쏟아집니다.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싸움에는 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싸움 끝엔 얻는 것도 없습니다. 싸움이 스포츠로 즐기는 것이 될지, 전쟁으로 번질지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진정한 싸움은 놀이이지만 증오가 끼어든다면 더 이상 놀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작가들의 빛나는 통찰입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싸움#코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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