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나그네(Winterreise·단어 의미는 ‘겨울여행’)의 계절입니다. 올겨울에도 전국 곳곳에서 이 가곡집이 무대에 오를 겁니다. 모두 24곡의 노래 중 ‘보리수’가 가장 사랑받지만 저는 네 번째 곡 ‘얼어붙다(Erstarrung)’에 가장 자주 손이 갑니다. 얼어붙은 들판을 보면서, 푸른 봄날 그곳을 연인과 함께 걸었던 일을 회상하는 가슴 저릿한 노래입니다.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귀에 뭔가 딱 하고 걸렸습니다. ‘내 마음은 죽어버린(erstorben) 듯/그녀의 모습 그 속에 차가워라’라는 부분에서 가수는 ‘죽어버린 듯’ 대신 ‘얼어붙은(erfroren) 듯’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왜 가사가 다를까요?
지인이 가곡 가사 웹사이트를 참고해 ‘슈베르트가 작사자 빌헬름 뮐러의 원시(原詩)에서 여러 부분을 바꾸었다. 겨울나그네 속의 다른 노래들도 그렇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다른 부분들은 슈베르트가 바꾼 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독 이 부분만 뮐러가 쓴 ‘얼어붙은 듯’이 함께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독일가곡 바리톤의 대명사인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도 ‘죽어버린 듯’과 ‘얼어붙은 듯’을 녹음 시기에 따라 바꾸어 쓰고 있었습니다.
별 차이는 없는 듯했습니다. 노래 속에서의 운율도 두 가사 모두 들어맞고, 마음이 죽어버리거나 얼어붙거나 한탄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다른 지인이 얘기합니다. “나는 둘 사이의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왜요?” “죽어버린 것은 다시 살아날 수 없죠. 하지만 얼어붙은 것은 봄에 다시 녹잖아요.”
그러고 보니 문맥상으로는 ‘얼어붙은 듯’이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곡 후반부에 ‘마음이 다시 녹을 때’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슈베르트는 뮐러의 원시를 읽고 나서 화자(話者)의 삭막한 마음을 한층 절망적인 것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슈베르트의 슬픔이 작사자 뮐러의 슬픔보다 더 깊고 아득했던 것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는 ‘겨울나그네’를 작곡한 1828년 31세의 나이로 사랑을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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